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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어설프게 마음공부를 한 사람의 병폐는 무엇이나 두루뭉술하게 생각하려 하고, 그렇게 말하려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른 식견(正見)이 아니며, 깨어있음 역시 아닙니다. 그것을 무기공(無記空)에 빠졌다고 합니다. 見性을 했다고 '술에 술 타고, 물에 물 타는 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시 둥근 것은 둥글고, 세모난 것은 세모나며, 부처는 부처고, 중생은 중생입니다. 분별심이 없어졌다는 것은 쓸데없는 머리를 굴리지 말라는 것이지, 대강 얼버무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더러는 면도날보다 더 날카롭고, 청양고추보다 더 매울 수 있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역시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지만, 그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 깨달음의 속성입니다.
자신의 신분(身分)을 규정(規定)하려 하지 말라. 당신의 출신 성분이나 교육 정도, 재력과 관계 없이,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인간의 차원에서 말이다. 당신의 의식이 정하는 대로 당신의 신분은 정해진다. 당신은 자신이 어떤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그것에 맞도록 생각하고 행동한다. 당장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는 것은 당신의 가능성을 막아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느 유형도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스스로를 규정한 만큼, 그런 인생이 된다. 당신이 성스러운 사람(브라만)이 될지, 권력 지향(크샤트리아), 상인(바이샤), 하층 노동자(수드라)가 될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다. 심지어 불가촉천민이 될지도....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 현재 당신이 얼마나 깨어있느냐에 따라 당신은 새롭게 태어..
잠을 자고 있으면, 누가 밖에서 들어오거나 누가 밖으로 나가도 모른다. 선물을 가져와도, 도둑이 들어와도, 모를 뿐이다. 깨어있음이란 자각(自覺), 즉 "자기 本性을 알아채고 있음"이다. "깨어있음"이라는 말만 제대로 이해하면 공부는 거의 된 것이나 다름없다. 육창원(六窓猿)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창문 여섯 개는 안의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의 감각기관이며, 원숭이는 정보를 총괄하는 성품(性品)이다. 깨어남은 애씀이나 고행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얼마나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서 성패가 갈린다. 상근기(上根器)는 단지 스승의 말 한마디 "直指人心"만으로 담박 깨어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의 인연 따라 호흡법, 지관법(止觀法), 간화선(看話禪), 주력(呪力), 기도, 단전(丹田)호흡 등 ..
잔치를 열어 손님들을 초대했는데 오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자, 주인은 "길에 나가 거지든 부랑자든 데려오라.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이리라"라고 했다지요. 성경(聖經; the Holy Bibl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성의껏 글을 써 보냈는데, 이왕이면 몇 줄 댓글을 남기는 것도 좋으련만.. 여러날째 읽은 기색조차 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유야 많겠지만 이제 그런 분들은 명단에서 삭제하려 합니다. 제가 혹시 그분들께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양지하시고 부디 건승하십시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은 없다. 심각한 건강 문제나 실연(失戀), 불합격, 사업의 실패 등,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때가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그때 자기에게, "지금 괴로움을 겪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해 보라. 그 괴로움을 묵묵히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면, 견성(見性)에 벌써 다가선 것이다. 바라보고 있는 나와 괴로움 당하는 그것이 별개라고 느껴진다면, 한 발 더 가까이 간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단지 흘러 지나가는 바람이라 느껴진다면 공부는 마무리 단계다. 오직 "깨어있음"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우리는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일상생활 모두를 생각이 주도합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알고, 느끼는 오감(五感)은 바로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거의 습관적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합니다. 그러나 생각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시 분별하여 행동의 지표가 되게 하는 생각과, 단지 '그렇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분별 작업은 입력(入力)된 Database에 근거하여 진행됩니다. 그리고 분류가 완료되었을 때, 비로소 안심합니다. 수많은 위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유위(有爲)라 하며,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그것의 뒤에는 항상 "나"라는 것(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내려놓은 생각입니다. 그..
경계(境界)를 따라가지 말고, 생각을 하고 있는 그놈을 주시(注視)하라! 눈이 눈을 볼 수 없듯, 생각을 하고있는 그놈은 생각이 아니다. 이 몸과 이 마음도 '나'는 아니고, 십팔계(十八界)도 '나'는 아니다. 그것은 모양도 없고, 소리도 없고, 느낌도 없고,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며, 선(善)하지도 악(惡)하지도 않고,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지만, 만상(萬象)을 나타나게 한다.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그것은 빛이요, 소리요, 에너지다.
지혜자의 말을 꾸준히 듣다 보면, 마음속에 자리 잡아 나를 불편하게 했던 알 수 없는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후부터는 마음에 끄달림 없이 살게 됩니다. 그렇게 개운할 수 없고, 그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나에게 부담을 주고 나를 괴롭히던 온갖 것들이 없어지고, 그냥 자연스럽게,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게 됩니다. 똑같이 해 뜨고 저녁 오지만, 똑같이 사람들 만나고, 하던 일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구상하며 살지만, 더 이상 헛된 것에는 속지 않고 살게 됩니다. 무너져 내린 것은 허깨비 같은 생각들과 알음알이입니다. 그런 것들은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태를 가리켜 바른 견해의 회복,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면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어야 할..
논리적인 설명도 필요 없고, 감정이입을 한 설득도 필요 없다. 당사자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혹세무민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은 이미 스스로 설득되어 있다. 대개가 지성이 부족하거나, 허황한 꿈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은 외모나 비논리적 분위기로 신비감을 조장한다. 거의 상식적이 아니고 증명이 불가능한 귀신 이야기나 외계인 이야기를 한다. 말세나 개벽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여러 사기꾼이 너무도 자주 써먹던 올드 버전이다. 깨어있는 사람은 이치를 중시하므로 그런 사이비에는 속지 않는다. 지성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은 '깨어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