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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선도(仙道)는 마라톤과 같다. 페이스를 유지하며 뛰어야 한다. 담박 깨치고 단번에 닦아 마치는, 그런 일(頓悟頓修)은 불도(佛道)에서나 일어나지, 선도엔 없다. 쉬이 더운 방이 쉬이 식는다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무리하는 사람은 거의 중도에 탈락한다. 반환점(四仙)을 돌 때까지는 선두그룹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처음부터 앞서려 하지 말라. 꾸준히 달리면, 기다리면 앞서 나갈 기회는 저절로 온다. 스퍼트는 결승점 4km를 남겨놓고 하는 것이 좋다. 혼자 먼저 가겠다고 코스를 이탈하면 실격이다. 스승과 선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한발 한발 전진하는 것이 신선 공부의 첫 덕목이다. 서둘러 상수(上手)가 되겠다고 처음부터 열을 올리는 사람치고 지금까지 선도연맹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다. 50년을 뒤돌아보니, 결국 ..
소출(所出)이 적다고 섭섭해하지 말라! 딱 씨 뿌려 가꾼 만큼만 거두게 되어있다. 누가 날 섭섭히 대할 때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한다. 만사는 내가 정성 들인 만큼만 돌아오게 마련이니 말이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 하지 말라. 평년작만 되어도 대박이다. 잘못해서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사람도 있다. 조그만 것에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늘은 감사하는 사람에 더 많은 것을 선사한다. 늘 스승을 따라 게으름 피우지 말고 꾸준히 닦아야 한다. 세월은 결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적어도 50살 이상 살았다면 그동안 적어도 몇천 명의 사람은 만났을 것이다. 재밌게 놀아주던 동네 친구들, 초등, 중등, 대학의 친구들에서 시작해, 나를 좋아했던 사람, 내 가슴을 절절하게 했던 사람, 내가 필요해 만난 사람들, 나를 필요로 해서 만난 사람들, 사람들... 그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는가? 그 중엔 이 사람이라면 평생 친구로, 동료로, 동반자로 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폰 속에 전화번호라도 남아 있는가? 아마도 패티의 노래 속,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요"처럼 되었을 것이다. 여간한 로맨티스트가 아니라면 아직도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라고 읊조리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가 다해 사라진 사람들, 사소한 오해로 절교한 사람들, 사람들....
타인의 무례(無禮)한 행동에 벌컥 화부터 내는 것은 운전자가 핸들을 놓치는 것과 같다. 누군가 나에게 무례한 일을 하면, 먼저 나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공손히 타이르고, 듣지 않을 경우는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다. 아니면 봉변을 면할 길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스승으로 삼으라. 세상에서 배우는 것이 스승에게 배우는 것보다 더 많다.
인도에서는 스승을 신(神)과 동격으로 모신다. 그리하는 이유는 나누어만 줄 뿐, 나로부터 가져갈 것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를 기쁘게 하는 방법은 말보다 실천이다. 만리장성같은 말을 할지라도, 행동이 없다면 개 짖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바쁘게 움직이고, 숨 죽이고 조용히 앉아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살아있는 스승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찾아가 물어야 한다. 그것이 스승을 스승으로 대접하는 길이다. 스승 앞에서는 자기를 점검받아야 한다. 그것이 스승이 존재하는 이유다.
유위법(有爲法)이 없으면, 무위법(無爲法)은 없다. 무위법을 깨치기 위해 스승이 필요하다지만... 찾아헤매는 유위법이 없이 어디 가서 옳은 스승을 만날 것인가? 구하고 두드려야 한다. 구하는 자는 얻을 것이요,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 감나무 밑에 몇 년을 누워 있어야 과연 감 하나가 입에 들어갈까? 무위법만을 숭상하고 유위법을 무시한다면, 백 년을 산속에서 고생한다 해도 손에는 허망함만 남을 것이다. 우선 바른 스승을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것은 무위와 유위를 넘어서 있다.
소인에게 소인(小人)이라 하지 말라. 그는 스스로 대인(大人)이란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인의 허물을 들추지 말라. 평생의 원수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스승은 목숨을 걸고 제자의 허물을 지적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본인의 소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을 멀리 하라. 그들과 논쟁도 하지 말라. 가까이할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외로움을 즐겨라. 한 사람의 동조자로 만족하고, 그도 아니면 혼자 지내라. 그것이 지혜자의 자세이다.
스승 밑에서 배우다가 그를 떠나게 되거나 파문(破門)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없으면 못살 것 같이 살다가도, 헤어질 인연이면 헤어지는 것이 인생사이니 떠나야 할 일이 생기면 떠나고, 보내야 하면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정(事情)으로 인해 헤어지더라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법은 지켜져야 한다. 배운 것 중에 허락 없이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다고 한 약속은 무엇보다 먼저 지켜야 한다. 스승에 따라서 가르침이 이치에 맞지 않거나 독선적일 때, 그리고 그 밑에서는 더 이상의 진보를 기약하기 어려울 때 조용히 스승을 떠날 수 있다. 그리고 제자가 사고(思考)가 반듯하지 못해 종지(宗旨)를 어기고, 공부 외에 잡사(雜事)를 쫓으며, 오만(傲慢)하여 문중(門中) 내에 분란을 일으..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다. 그러나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목이 마르지 않은 말은 물장난만 할 것이다. 스승은 밥상을 차려줄 뿐, 제자가 아직 어려 밥 먹는 것이 서툴어도 대신 먹어주진 않는다. 그리하면 평생 제자는 밥맛을 모르고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밥을 맛나게 먹으려면 우선 배가 고파야 한다. 배고프지 않으면 식당에 가지 말라. 그리고 식탁에 앉았다면 머리는 쉬고, 눈과 코, 혀 그리고 배로 먹으라. 여기선 어떤 지식도 필요하지 않다. 식탁에 앉으면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라. 레시피가 무언지 이해하려 하지 말라. 그것은 나중에 당신이 요리를 할 때 필요한 것이다. 단순해져라. 짜면 짜다하고, 싱거우면 싱겁다 하라. 괜히 맛있는 척 할 필요는 없다. 입에 맞는 것부..
이제 어느 학생도 선생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지금의 학생은 선생이 얼마나 학식이 있는지를 심사하는 검사관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학생을 꾸짖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 선생이란 사람은 단지 정보의 전달자이고 학생은 전달받는 자이다. 스승과 제자의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제 매우 드물다. 스승이란 말, 君師父一體란 말은 박물관에나 가서 찾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누구도 弟子는 고사하고 學生조차 되려 하지 않는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모니터 앞에서 손가락 몇 번 움직여 간단히 알아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학교는 서비스업이 되었다. 先生은 단지 정보를 전달해주고 생계를 이어가는 업자일 뿐이고, 學生은 정보를 돈 주고 사는 존경받는 고객이다. 공자(孔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