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소주천 (72)
谷神不死
시심마(是甚麼 :이 뭣고?), 삼서근(麻三斤),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뜰앞 잣나무)를 단순한 말이나 염불(念佛)로 생각해선 안됩니다. 몸(가슴)과 마음 어느 구석에 걸려서 뿌리치기 어려운 조건이 되지 못한다면 화두(話頭) 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선도(仙道)의 소주천(小周天) 공부 역시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삼관(三關)을 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소주천을 진행하다가 꼬리뼈(尾閭)에서든, 등 중앙(脊中)에서든, 대추(大椎)에서든, 氣가 걸려 꼼짝없이 흐르지 못하면 오히려 즐거워해야 합니다. 수행을 지속하는 한, 조만간 열리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맥(脈)이 뚫려 나갈 때의 그 개운함이란 무엇에도 비기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깨달음(밝음)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계기로 하여 점점 밝아지게 됩..
깨달음은 무위법(無爲法)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깨달음에서 멀어집니다. 소주천(小周天)은 유위(有爲)로 시작해 무위(無爲)로 마무리합니다. 축기(蓄氣)가 필요하고, 집중(集中)이 필요하고, 자기 제어(Self-control)가 꼭 필요합니다. 처음엔 땀 흘려 끌고, 밀어주어야 하지만, 나중엔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소주천은 유위와 무위의 협업(協業)입니다.
견성(見性)과 소주천(小周天)은 선도(仙道)교사의 필수 덕목입니다. 선도 교사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하므로, 본인부터 먼저 숙지해야 합니다. 견성은 자성(自性)의 깨달음, 즉 자기를 아는 것이고, 소주천은 내 몸의 에너지를 통하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견성과 소주천은 이제 불교(佛敎)와 도교(道敎)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그 둘은 행복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그 둘은 옛날엔 평생을 바쳐서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자동차 운전이 옛날엔 10년을 조수로 따라다녀야 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학원 한 달만 다녀도 누구나 하는 것이듯 말입니다. 견성과 소주천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관심사가 다른 데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심사가 여기에 ..
삼매(Samadhi)에 들 때, 우리는 고요함과 안정감 속에 있게 됩니다. 그때 빛(눈을 감았는데도)과 소리를 체험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빛을 일부 신앙단체에서는 "니미따(Nimitta)"라고 하여 깨달음의 전조(前兆)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수행 도중 체험이 일어나는 것이 고무적임은 틀림없지만, 그것만을 깨달음과 연결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수행의 여정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며, 일상사 어느 것도 깨달음과 연관되지 않은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선도(仙道)를 닦다 보면 몸의 일부(손)나 온몸에서 열감이 나기도 하고, 전기와 자기가 합해진 듯한 것을 실감(實感)합니다. 그것은 필요할 때 언제라도 느껴지는데, 통기(通氣)가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기감(氣感)이라고 합니다. 하지..
仙道에는 '깨달음'이란 말이 없다. 단지 '소주천(小周天)'만을 강조한다. 선도의 모든 행법은 소주천을 向하고 있다. 소주천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얻는다. 하나는 전신(全身)의 에너지(氣) 타통과 부족함이 없는 넉넉함이요, 다른 하나는 실존(實存)을 볼 수 있는 안목(眼目)이다. 仙道의 '개안(開眼)'이란 바로 알아차림의 회복을 말한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눈이 있다. 하나는 육안(肉眼), 즉 물질계를 보는 눈이고, 다른 하나는 비 물질계, 절대계(絶對界)를 볼 수 있는 눈이다. 인간이 영장(靈長)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영안(靈眼; 神眼)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이는 견성(見性)이 불가능하며, 또한 얻어진 깨달음 역시 유지하기 어렵다. 안목(眼目)을 얻는 데 소주천 만한 것은 없다. 그것이 ..
소주천(小周天) 이후 다시 의수단전(意守丹田)을 일정 기간 지속하면, 단전 중앙에 작은 기운 주머니가 하나 생겨 호흡에 따라 저절로 부풀었다 꺼졌다 하게 되고(2차 단전호흡) 그것이 상당시간 지속되면 그 중앙에 마치 불랙홀 같은 구멍이 하나 생기는데 그것을 현빈일규(玄牝一竅)라 한다. 현빈( 玄牝)이란 말은 "신비로운 어미"란 뜻이다.일규가 열리면 만맥(萬脈)과 통한다 했듯이 동시에 전신의 기맥(氣脈)들이 반응하며 에너지(氣)를 공유한다. 경험에 의하면 그 구멍(窺)는 왼쪽도 아니고 아래 쪽도 아닌 단전의 중앙(核)이며(용호비결 참조) 그 일 이후 양신(에너지체) 공부가 제대로 시작되는 것이다.단전축기(丹田蓄氣)와 함께 하복 좌측(下腹左側)에 구멍이 하나 열리는 것을 현빈일규라 하는 주장이 있으나,..
크리야 요가(Kriya Yoga)와 仙道는 자화(磁化; Magnetizing)가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한다. ('수행의 왕도 크리야요가' 참조) 믿을만한 실험은 인체에 磁場(Magnetic field)을 형성시켜 주었을 때 면역력과 더불어 치유력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Kudalini의 통관(通貫)과 仙道의 小周天은 현대과학적 해석으로는 인체를 磁化시키는 것이며, 그 磁化의 정도가 바로 깨달음의 깊이이며, 功力이라 설명한다. 순수의식(純粹意識)을 체험하거나 通氣가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감각적으로 磁場(Magnetic field)을 체험하는데, 그것은 심신을 안정시키고 지병(持病)을 호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지속적으로 磁化가 전신적으로 확대되면서 우리의 의식(意識)..
임독맥(任督脈)을 따라 기(氣)를 움직이는 것을 유위법(有爲法)이라 한다면, 氣가 움직이는 것을 주시(注視)하는 것은 무위(無爲)입니다. 無爲가 체(體)라면, 유위(有爲)는 용(用)입니다. 세상은 無爲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오, 體와 用이 합쳐졌을 때 무엇 하나라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천(周天)이 이루어짐은 有爲라 할 수 있겠으나, 고요함은 저절로 드러나므로 그것은 無爲라 할 수 있습니다. 무위와 유위가 서로 협업(Collaboration)할 때, 비로소 입정(入靜)에 이어 소주천(小周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축기(蓄氣)가 된 사람은 기(氣) 치료를 할 수 있다. 막힌 氣를 터주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소주천(小周天)을 이룬 사람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병(病)이 생겼다는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에너지(氣) 흐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약한 氣를 보완하고, 통하게만 하면, 병(病)은 낫는다. 생명의 구조가 그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氣 치료를 위해 꼭 손을 대야 할 필요는 없다. 氣는 전파처럼 파장(wave)이므로 마치 WiFi처럼 그 영역권에만 들어오면 작용(作用)한다. 하지만 환자와 가까이 있을수록 효과적이다. 그것은 환자의 믿음과 안정감 때문이다. 예수는 언제나 "믿음이 너를 고쳤다"라고 했으며, 치료자는 자기 확신의 힘으로 난치병을 고쳐낸다. 하지만 기(氣)의 압력(voltage)을..
한 끼만 굶어도 죽는다고 겁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식(斷食)을 일상사처럼 하는 사람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웬만큼 건강한 사람이라면 한 달 정도 단식했다고 죽지 않는다. 물만 마셔주면 말이다. 자기를 시험하는 셈 치고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식을 시작할 때 바로 시작하지 말고 며칠간 식사량을 줄여가는 예비 단식을 하라는 조언도 있지만 나는 단식 할 때마다 전날에 죽 한 끼 먹고 다음 날부터 곡기(穀氣)를 끊었어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회복식도 단식한 날짜만큼은 해야 한다고 가이드 북에 쓰여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그냥 하루 정도 죽을 먹고 다음 날부터 밥을 먹었어도 별로 문제는 없는듯..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만 위(胃)와 상의해가며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을 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