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명쌍수 (21)
谷神不死
깨닫지 못한 사람에겐 이 몸과 마음이 꿈(妄想)에 불과하지만, 개안(開眼)을 한 사람에겐 이 몸도 마음도 세상도 실재(實在)한다. 왜냐하면 그때부턴 주인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밝아진 이후는 세상에 살든, 중심 에너지와 합일하든, 그 결정권이 모두 자기에게 있게 된다. 선도(仙道)를 닦으면 그리된다. 성명쌍수(性命雙修)가 아니면 혼은 허공에 날아오르고, 몸은 흙이 되어 흩어지고 만다. 그것을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 한다. 하지만 性命雙修를 이룬 사람은 자격이 한 단계 승급하여, 죽어서도 지선(地仙)의 자리에 올라 자유(Moksha)를 누리게 된다. 仙道의 불로장생(不老長生)이나 장생불사(長生不死)는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性命雙修란 밝음(깨달음)과 함께 득명(得命), 즉 命에 대한 운영권을 ..
https://youtu.be/dKcBBV0mZcQ
https://youtu.be/-qx_rgiMSK8
깨달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수행자에게 있어 깨달음이란 “나는 누구인가?”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힌두(Hinduism)이든, 불교(佛敎)이든, 선도(仙道)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약간의 기법(技法)상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힌두들의 깨닫는 법은 보통 만트라(Mantra 또는 진언[眞言: 참된 말, 진실한 말, 진리의 말] 혹은 밀주(密呪) 또는 다라니(陀羅尼)라고도 하며 "영적 또는 물리적 변형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는 발음, 음절, 낱말 또는 구절)를 통해 사마디(Samadhi, 禪定, 三昧)를 체험함으로 신(神) 혹은 진리와 합일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힌두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방법론에 있어 다양한 방법을 구사합니다. 힌두처럼 만트라(呪力)를 사용하기도 하고 관법(觀..
정암 선생님과 마니산 정상에 올랐다. 마니산은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기운이 좋은 신선(神仙)의 산이라고 알려져 있어서 이번 기회에 꼭 한 번은 오르고 싶었다. 특히 선생님과 함께 오르면 왠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등산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기운이 강한 곳'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매년 개천절에는 정상(塹星壇)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는데 강화군에서 주선한 선녀(?)가 헬기를 타고 내려온다고 했다. 산은 오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등산로를 계단식으로 다듬어 놓은 것이 오히려 오르기 더 힘든 것 같았다. 90세가 다 된 봉우(鳳羽) 선생님이 여기를 오르셨다는 말을 듣고 '과연 도인(道人)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내려와, 근처 식당을 찾았다. 내가 좋..
우동 집은 멀리 있지 않았다. 옆 동네 '온수리(溫水里)', 과거 이곳에서 온천물이 나와 붙여진 이름이란다. 육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바람에 도로 메워 버렸다고 한다. 언젠가 다시 개발할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옆 섬 보문사(普門寺)가 있는 석모도(최근에 다리를 놓아 강화도와 연결했다)에 훌륭한 온천휴양지가 만들어지고 있어 그리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와, 우동 맛이 너무 좋네요. 제 입맛에 딱 맞아요.’ ‘그렇지? 일본 교토 여행길에서 먹었던 우동 맛이 가끔 생각났었는데, 이 집 우동 먹어보고는 사라졌다니까. 서빙하는 주인아저씨 태도가 요새 아주 부드러워졌어요. 첨엔 화난 사람 같아 우동 맛을 떨어지게 했었는데….’ * * * * * ‘건강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 주셨는데, 사실 수행자에게..
佛家의 공적(空寂)을 仙家에선 허(虛)라 칭한다. 虛(空)는 텅 비어 있기도 하고, 가득 차 있기도 한 근본적 자리이다. 그곳으로부터 "알아차림"과 만유(萬有)가 출현한다. 그 알아차림(作用)이 없이는 하늘 땅은 물론 하느님도 존재할 수 없으므로, 老子는 그것을 가리켜 "하느님(上帝) 보다 먼저"라 하였다. 알아차림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것(있음)을 확인하며, 만유의 연기성(緣起性)을 알게 되는데, 그것을 초견(初見)이라 한다. 마침내는 그 알아차림의 근원자리인 虛(空寂)와 완벽한 계합(契合)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가리켜 확철대오(確徹大悟)라 한다. 깨달음이란 앞에서 언급했듯,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알아챈 것이며, 그것은 어렵지 않다. 헐떡이는 마음을 조금만 가라..
佛家의 공부는 공도리(空道理)를 깨우치는 것이라 한다. 굳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이나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皆是虛妄) 같은 경전 말씀을 채용하지 않더라도 착(着)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오온(五蘊)이 空함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仙家의 공부를 佛家 입장에서 본다면 着을 버리지 못하는 공부다. 바탕은 虛(空)함에서 시작하나, 여전히 色의 세계를 즐기며 살고있기 때문이다. 佛法의 見性은 간단히 말해 性品을 보는 것이요, 누구나 알고자 하기만 하면 단박에 깨우치는 공부라면, 비록 깨우침이 있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몸과 마음을 놓지 못하는 공부가 仙法이다. 공도리를 깨우치기 위해선 어떠한 노력도, 수련도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여기 이대로 완벽하게 있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仙家의 경우 비록 깨달음..
성명쌍수(性命双修)란 성(性)과 명(命)을 동시에 닦아간다는 선도 용어이다 性이란 깨달음, 즉 本性을 말하며 命은 목숨(몸과 마음), 즉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세계를 말한다. 佛道는 性이 중심이고 그 외의 것은 모두 허망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仙道는 다르다. 결코 이 삶을 헛일이라 생긱치 않는다. 희로애락(喜怒哀樂), 먹고 자고 쉬고 놀고 즐기는 생생한 이 삶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선도는 좀 더 현실(?)에 가까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선도는 見性을 따로 강조하지 않고 우선 命 중심으로 공부를 진행한다. 그렇다고 본자리 공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性공부를 중시하지 않는 이유는 애써 찾아나서지 않아도 命공부를 진행하는 가운데 저절로 밝아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命공..
보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고급의 선물일수록 여러겹의 포장이 있으며, 귀한 손님일수록 건물 뒤 내실(內室)로 안내되는 법이다. 공부를 하다보면 말 한마디에 담박 깨우쳐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견성(見性)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부의 모두라고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그것을 '세수하다 코만지는 것보다 쉽다'고들 하는데 체험해보면 틀리지 않은 말이다. 그냥 보면(just look) 바로 보여지는 것이 性이다. 그래서 돈오돈수(頓悟頓修)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늘 드러나 있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기관(五感)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장맛 짠 줄만 알면 견성이다."는 말은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애를 쓸 필요가 전혀 없다. 생각을 잠시 쉬고 그냥 보면(Don't think just 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