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민정암 시리즈 (7) 소주천(小周天) 본문

오희정의 인터뷰

민정암 시리즈 (7) 소주천(小周天)

thedaywemet 2019. 12. 24. 08:00

<마니산 참성단 개천절 행사 (출처: 강화군청 홈페이지)>

 

정암 선생님과 마니산 정상에 올랐다. 마니산은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기운이 좋은 신선(神仙)의 산이라고 알려져 있어서 이번 기회에 꼭 한 번은 오르고 싶었다. 특히 선생님과 함께 오르면 왠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등산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기운이 강한 곳'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매년 개천절에는 정상(塹星壇)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는데 강화군에서 주선한 선녀(?)가 헬기를 타고 내려온다고 했다.

 

산은 오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등산로를 계단식으로 다듬어 놓은 것이 오히려 오르기 더 힘든 것 같았다. 90세가 다 된 봉우(鳳羽) 선생님이 여기를 오르셨다는 말을 듣고 '과연 도인(道人)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내려와, 근처 식당을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도토리묵과 파전, 그리고 선생님께서 즐겨하신다는 인삼 막걸리를 주문해 놓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 * * * *

 

‘선생님, 오늘은 마니산도 오고 했으니 신선(神仙)과 소주천(小周天)이야기를 해주세요.’

‘그럽시다.’

‘신선이라 하면 하얀 수염에 바둑을 생각하게 되는데, 신선은 어떤 존재인가요?’

‘신선(神仙) 이야기는 반신(半神), 반인(半人)인 하느님(桓因)의 아들로 시작해요. 천상(天上)에서 내려와 땅의 여인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그분이 단군(檀君)이 되셨고, 그분들에 의해 조선(朝鮮)이 건국되었지. 그분들이 바로 우리의 조상인 신선(神仙)들이에요. 우리 속(DNA)엔 신선의 피가 흐르고 있지. 그래서 우리를 신선 민족이라 하는 거야.

 

‘여태 그것도 모르고 살았었네요.’

‘지금부터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도록 해요.

 

‘그래야겠어요. 그럼 본격적 공부로 들어가서 흰 수염의 노인 모습으로 구름을 타고 다니며 바람과 비를 부른다는 신선은 무엇을 가리키나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좋아요. 흰 수염의 노인 모습은 경륜(經綸)이 높다는 의미이고, 그는 마음을 다스려 마친 물질계(物質界)의 지배를 받지 않는 대자유인이라 해석해야 해요. 아울러 술과 여인(仙女), 그리고 바둑과 함께한다는 것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란 뜻이고....’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면 늘 새롭고 매우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오 기자가 열린 사고를 하는 덕이지. 비현실적으로 바라보자면 한없이 비현실적인 것이 신선사상(神仙思想)이야.’

‘중국 사람들은 신선사상을 자기들 문화라고 한다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들도 신선이 되고픈 거 아니겠나? 어찌 생각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이고... 게다가 요즘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이름으로 고구려, 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모두 그들의 역사로 만들고 있잖아.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어날 영토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모두들 알고는 있지.’

‘아! 그런 일이 있군요.’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양심적인 중국의 사학자(史學者) 대부분은 신선(神仙)의 원류를 '백두산(白頭山)'에 두고 있어요. 그들이 백두산에 그리 집착하는 이유도 자신들도 신선의 후예가 되고 싶은 거야. 내가 알기론 마오(毛) 주석의 아들도 한국 동란에서 전사했고 중공군이 35만인가 전사했다고 해요. 그 감춰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리하고 얻은 것이 고작 백두산 반쪽이지만 발은 반쯤 걸친 격이지.’

‘그랬었군요. 그리고 신선사상에서 연유한 것이 선도(仙道)이고요.

‘바르게 이해했어요.’

 

‘그렇다면 선도가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거야 당연히 자유(自由)지.’

‘자유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요?

‘첫째, <물질로부터의 자유>이고, 둘째, <시간으로부터의 자유>, 셋째는 <마음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해. 좀 더 설명하면, <물질로부터의 자유>란 우선 건강과 재물을 장악하며 사는 것 아니겠나? 신선(神仙)이란 사람이, 몸이 아파 골골하고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하고 살아서야 신선(神仙)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시간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해서는 과거와 미래로 오가며 사는 초능력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시간 관리를 잘하며 사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게 현실감이 있지요. 스케줄 관리를 잘하며 사는 사람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지요.

 

<마음으로부터의 자유>야 말로 중요하지요. 그것은 깨달음을 말해요. 깨달은 사람은 마음이 허상(虛像)임을 알기 때문에 마음에 휘둘리지 않지요. 그에겐 오직 본성(本性)뿐이지요. 그것을 깨우친 것을 가리켜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그럼 그 자유를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몸과 마음을 닦아야겠지. 살아있는 우리에겐 모든 것들이 심신(心身)과 연관되어 있으니 말이야. 선도에서는 몸과 마음을 작용(作用)시키는 것을 기(氣)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실지로 그러하지. 그것이 없으면 진리(理)도 행세할 수 없어요. 하늘땅도, 심지어 하느님도 작용할 수 없지. 그래서 선도는 기(氣) 하나를 닦는 것으로 몸과 마음의 자유를 누리려 한다네.’

‘너무 간단하네요.’

‘사실 복잡하게 이야기하면 한없이 복잡해요. 선도(仙道)는 정기신(精氣神)을 '삼보(三寶)'라 하여 중요시 생각하고, 연정화기(鍊精化氣), 연기화신(鍊氣化神), 연신환허(鍊神還虛)의 3단계로 공부를 짓고는 있으나, 사실상 그 중심에는 기(氣)가 자리 잡고 있어요. 우리에게서 氣가 빠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그것은 세상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의 중심에 氣가 작용하는 거 아닌가 말이야.’

 

‘그러면 선도에서 중요시하는 성명쌍수(性命双修)도 기(氣)하고 연관되어 있겠군요?

‘어라? 이번엔 공부 좀 해서 왔네. 맞아, 기(氣)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돼. '득명(得命)'은 말할 것도 없고, 仙道에서는 깨달음(見性)도 氣가 중심이에요.

‘득명이요? 처음 듣는데 무엇을 가리켜 득명(得命)이라 하나요?’

‘우린 깨달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믿어. 깨달았어도, 죽을 때까지 밥 먹고 사회 생활하며 살아야 하지 않은가? '득명(得命)'은 명(命)을 얻는 것이고, 여기서 命은 <생명(生命)>과 <사명(使命)>을 말해요. 그것을 모르고 산다면 사람이라 하기 어렵지. 물론 깨달은 후 세상을 버리고 숲속에 들어가 평생을 보내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별외(別外)로 하도록 하세. 그들 나름대로 다른 뜻이 있을 터이니 말이야.’

 

‘그러면 성명쌍수(性命双修)를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나요?’

‘들어는 봤겠지? 소주천(小周天)이라고....’

‘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소주천이라고 하나요?’

‘의견이 분분하지. 일단 소주천은 우주를 한 바퀴 돈다는 뜻이야. 내가 알고 있는 소주천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봉우(鳳羽)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소주천이고, 하나는 전통적 소주천이 있어요.’

‘그 둘은 어떻게 다른가요?’

 

<단학과 단전호흡의 기의 흐름 비교: 단학요결(민정암 저)에서 발췌>

 

‘그림으로 설명해 볼게요. 하나는 기(氣)가 시곗바늘 반대 방향으로 복부 경로를 따라 회전되는 것을 말하는데, 선생님 말씀에 1분 호흡이 되면 하복부 왼쪽에 일규(一竅)가 열리면서 자동으로 그리된다고 가르치셨어. 또 하나, 전통적 소주천은 단전(丹田) 축기(蓄氣) 후 氣가 하향(下向)하여 회음(會陰)을 관통하여 독맥(督脈)을 따라 상승(上昇)했다가 정점(頂點) 백회(百會)를 지나 임맥(任脈)을 따라 하행(下行)하여 단전 자리에 다시 회귀(回歸)하는 것을 말해요. 양쪽의 회전 루트가 상당히 다르지?’

‘그렇네요. 완전히 다른 공부네요. 그럼 선생님은 봉우 선생님 소주천을 먼저 하셨겠네요?’

‘불행히도 그렇지는 못했어. 호흡이 2분을 넘었어도 무슨 일인지 반쯤 통과하고는 열어주지를 않으시더라고...’

 

‘왜 그러셨을까요?’

‘나도 모르지. 아마도 사전에 내 몸이 많이 상했었나 봐. 일규(一竅)가 열리고 상행(上行)을 시작하길래 너무나 좋아했는데, 반쯤 진행을 하고는 마치 고속도로에 사고가 난 것처럼 불통이 되어버리는 거야.’

‘그래서요?’

‘그럴 땐 살살 밀어보라고 하셔서 그리해 보았는데 그 자리가 찢어지는 듯 아프고 숨 쉬는 것까지 힘들어지는 거야. 별도리가 있나? 거기서 작전상 후퇴를 했지.’

‘그래서 포기하고 말았나요?’

‘일단은 그리하고 전통적 소주천(小周天)을 시작했지.’

‘그래서요?’

 

‘그때가 태극권에 본격적으로 열중할 때야. 새로운 스승(김교일 선생)을 만나 그분의 도움을 받아 소주천을 이루었는데, 그 후에 봉우 선생님 소주천을 시도해보니 시원히 열리는 거야. 하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지.’

‘아하! 그러셨군요. 그런데 일설(一說)에는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이 관통(貫通)되는 것은 소주천(小周天)이요, 나머지 맥들이 모두 열리는 것을 대주천(大周天)이라 한다던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내 생각은 달라요. 대주천(大周天)은 대우주(大宇宙)를 도는 거예요. 당연히 소주천(小周天)은 소우주(小宇宙), 즉 우리 몸을 도는 것이고... 氣가 대우주를 도는 것은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신의 기맥(氣脈)이 타통되지 못하면 소주천이 어렵다는 것이에요. 의념주천(意念周天)이라면 모를까, 중간중간 끊겨 연결도 안 되고 소주천 자체가 불가능해요.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고속도로를 뚫을 때 그냥 불도저로 밭길, 산길을 일직선으로 뚫어서 도로를 만듭니까? 고속도로를 완성하려면 우선 국도와 지방도가 건설되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고속도로 완성이 어렵습니다. 안 그런가요?’

‘그래서 봉우 선생님 소주천이 중도에 막혀 열리지 않은 거 아닌가요?’

‘하하. 일리가 있는 이야기네요. 오 기자 보통내기가 아닌데?’

 

‘그러면 깨달음 이야기로 넘어가지요. 단도직입으로 물을게요. 소주천이 깨달음에 도움이 되나요?’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소주천이 곧 깨달음이야. 당사자가 몰라서 그런 거지. 일규(一竅)가 열리면 백규(百竅)가 열린다는 말이 있어요. 세상 모든 것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

‘쉽게 설명해 볼게요. 예를 들어 작년에 코트 주머니에 오만 원 지폐 한 장을 넣어 두고는 잊었다고 합시다. 그럴 수 있죠?’

‘물론 그럴 수 있죠.’

‘그럼 그 돈이 없어지나요? 인도로 여행 가나요?’

‘아니요. 거기 그대로 있겠죠.’

‘그렇죠? 이제 다시 겨울이 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무엇이 있나요?’

‘오만 원 지폐가 만져지겠죠.’

‘맞아요. 우리는 원래 깨달아 있어요. 자기가 깨달아 있다는 것을 모를 뿐입니다. 이제 설명이 되었나요?’

‘네, 예를 들어 설명하니 너무 이해가 잘 되네요. 그럼 저도 깨달을 수 있겠네요?’

‘물론이야. 지금 마음만 변하지 말아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여담(餘談)이지만, 옛날 그림에 신선들 옆에는 늘 술상이 차려져 있던데... 혹시 소주천이라는 것이 소주를 마시면 도움이 되는 그런 건가요?’

‘허허, 오 기자도 웃길 줄 아는구먼. 그럴듯한 해석이야. 소주천(小周天)은 그 소주(燒酒)가 아니라 작을 小, 두루 周, 하늘 天, 작게 우주를 한 바퀴 돈다는 뜻이야. 쉽게 말에서 소우주인 우리 몸을 기운(氣運)으로 한 바퀴 돌린다는 말이지. 그런데 오 기자의 말도 아주 틀리진 않았어. 소주천이 되면 충분한 이완 상태에서 잔잔한 환희가 찾아오는데, 술이 약간 취했을 때의 느낌과 상당히 비슷해.’

‘제가 완전히 헛짚은 것은 아니었네요, 하하. 오늘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마니산도 너무 좋았습니다.’

 

* * * * *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옛날 같으면 하늘이 분노해서 일식(日蝕)이 생기고, 왕이 정치를 잘못하여 가뭄이 든다고 하겠지만, 요즈음 세상에 그렇게 무식한 얘기를 하는 이는 없다. 또한 기계와 도구가 발전하여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GPS로 위치를 파악하고, 유용한 정보들을 한눈에 검색하여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기계에 너무 의존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이제 하루라도 핸드폰을 쓰지 않고는 살 수가 없게 되었고, 단순 노동은 물론이거니와 유희(컴퓨터 게임, 영화 보기 등)마저 기계 없이는 힘들게 되었다. 물론, 옛날의 생활 방식이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우리는 정신력이 훨씬 줄어든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사실 기계가 없어도, 우리는 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고, 무엇보다 가슴이 설렐 수 있다. 마치, 철새들이 GPS와 연료 탱크 없이 먼 길을 찾아가고, 사슴이 태어나자마자 제 발로 힘껏 일어나는 것처럼.... 이미 자연은 위대하고, 존재의 신비로움은 사방에 널려있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우리를 똑똑하게 하고 편리하게 만들었으나 의존적 사고방식을 길러 나약하게도 만들었다. 과학이 밝힌 것은 지구별이 우주 허공에 둥둥 떠서 돌고 있다는 것이며, 과학이 만드는 것은 요술 같은 인공지능인데도 말이다. 언젠가, 과학이 선도를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선도(仙道)는 에너지(氣)를 물질(精)과 정신(神)의 결합으로 보고, 그것을 깨달음(虛)으로 이끄는 증험의 공부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물질적 충족으로만 만족할 수가 없다. 스스로가 영적인 존재임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선도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7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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