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민정암 시리즈 (3) 성명쌍수 본문

오희정의 인터뷰

민정암 시리즈 (3) 성명쌍수

thedaywemet 2019. 12. 14. 08:00

우동 집은 멀리 있지 않았다. 옆 동네 '온수리(溫水里)', 과거 이곳에서 온천물이 나와 붙여진 이름이란다. 육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바람에 도로 메워 버렸다고 한다. 언젠가 다시 개발할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옆 섬 보문사(普門寺)가 있는 석모도(최근에 다리를 놓아 강화도와 연결했다)에 훌륭한 온천휴양지가 만들어지고 있어 그리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와, 우동 맛이 너무 좋네요. 제 입맛에 딱 맞아요.’

‘그렇지? 일본 교토 여행길에서 먹었던 우동 맛이 가끔 생각났었는데, 이 집 우동 먹어보고는 사라졌다니까. 서빙하는 주인아저씨 태도가 요새 아주 부드러워졌어요. 첨엔 화난 사람 같아 우동 맛을 떨어지게 했었는데….’

 

* * * * * 

 

‘건강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 주셨는데, 사실 수행자에게 건강이라 하면 비웃을 사람도 꽤 있을 듯합니다. 건강을 챙긴다는 것은 육신에 대한 집착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내려놓아야 해탈이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자유이겠지만, 선도(仙道)에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네. 우선 건강하지 못하면 수행도 바로 하기가 힘들 테니까…. 몸이 아파보세요,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지?’

‘맞아요.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지지요.’

 

‘<신선이냐 열반이냐>로 제목을 정했는데, 나는 ‘열반(涅槃)’보다는 ‘신선(神仙)’과 ‘해탈(解脫)’ 쪽을 선호한다네. 불교 쪽에서는 열반(涅槃)과 해탈을 동의어로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열반’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의 음역이고, 본뜻은 불어서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 즉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을 불어서 꺼버리듯 완전한 소멸을 가리킨다네. 완전한 소멸이 되면 벗어나고 자시고 할 일도 없겠으니 해탈이라 해도 별문제 없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진심으로 그것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말들은 그리할 수 있다 해도 말이야.

 

힌두 사람들은 ‘해탈(Moksha)’이란 말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 말은 무언가 작위(作爲)가 필요 없는 벗어남, 있는 그대로의 자유를 뜻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네.

 

사실상 자유(해탈)를 위해서는 그리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지. 요란스레 ‘출가(出家)’고 뭐고 할 것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내려놓고 살면 된다는 것을! 나 역시 가출(?)해 산 지 20년이 넘었지만... 출가는 왠지 신성해 보이고 가출이란 말은 좀 불량해 보이지?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허허.’

 

‘아, 그런 뜻이 있었군요. 선도는 신선(神仙)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죠? 그것이 자유의 상징처럼 느껴지지만... 일반적인 생각에서 신선이 “깨달은 사람인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기에는 머뭇거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알려진 신선의 모습은 술과 풍류를 즐기고, 여자친구(仙女)도 있어서 여유로움은 있어 보여도 여타 종교에서 느껴지는 경건함이나 진지함이 느껴지지는 않거든요.’

 

‘그런가? 그렇다면 깨달은 사람은 우리처럼 우동도 먹으러 오지 말고, 맛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모든 감각을 마비시킨 것처럼, 깎아 놓은 나무처럼 은둔하여 '면벽(面壁)'만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거의 뇌사(腦死) 상태인데…. 저 앞에 서 있는 소나무나 바위와 무엇이 다를까요?

 

옛날이야기 하나 해드릴게. 옛날에 어떤 보살(불자 여성)이 그럴듯한 한 수행자를 보살피기로 했다네. 자기는 꿈 못 꾸는 부처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겠지. 암자를 지어 그곳에서 불편 없이 수행하게 하고 때맞춰 먹을 것, 입을 것을 정성껏 챙겨주었다네. 큰 복을 짓는 일이라 알려져 있었거든.

 

하루는 공양(음식)을 가지고 산에 오르는 딸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시켰다네.

 

그가 식사를 마치고 나자, 젊은 딸은 슬며시 그의 품을 파고들며 물었다네. “스님! 지금 기분이 어떠하신지요?”라고 말이야. 그 말에 그는, “글쎄다. 나무를 안은 것도 같고, 바위를 안은 것도 같구나.”라고 멋쩍게 답을 했다네. 참으로 도(道)가 높으신 분이야. 그렇지?

 

그런데 그 말을 전해 들은 노보살은 단숨에 암자로 뛰어 올라가 집에 불을 놓고, 그 남자를 때려 내쫓으며 하는 말이 “저런 천하에 땡중 같으니라고. 내가 미쳤지.”였다네.

 

이야기 하나 더. 이건 거의 직접 전해 들은 이야기야.

시인 소월(素月)은 늘 만공(滿空)이 높은 도(道)를 흠모했다네. 하루는 친견을 하러 스님이 계신다는 금강산 절을 찾았지. 뒤 개울가에 계실 거라는 말을 듣고 갔더니, 아 거기 음식상 앞에 스님이 저고리를 벗어놓은 채 비구니들과 농담을 하시며 깔깔거리지 않으시는가? 당황한 소월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돌아서는데 뒤통수에 만공 스님이 한마디 하시기를, “좀 더 익혀서 오시게. 자네는 아직 멀었어.”

 

세월이 흘러 소월은 늘 만공이 생각날 때마다 그때 자기가 얼마나 철부지였던가를 후회했다네. 기차는 이미 떠나가 버렸고.’

 

‘하하. 그런 이야기도 있었던가요? 재밌네요.’

‘대부분 그렇게 자기 생각으로 재단하며 그리 믿고들 살아. 내가 알고 있는 금강경(金剛經)에 취한 한 일본 수행자는, “생에 대한 의지가 완전히 사라져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라는 생각 끝에 자살 길을 택하기도 했다네. 당시 금강경으로는 일본의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할 정도로 공부가 깊은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쪽 변(辯)을 들으면 자살했다고는 하지 않겠죠. 부처님을 친견하러 갔다던가, 뭐 그렇게 말하겠지요.’

‘맞아, 맞아. 이제 말이 좀 통하는 걸 보니 그러다 잘하면 수행자 되겠네.’

 

‘은근히 흥미가 생기네요. 그건 그렇다 하고.... 사실은 아까부터 성명쌍수에 관해 묻고 싶었어요. 노사님 글을 보면 그것이 노사님의 트레이드 마크더군요? 사람만 만나면 그것부터 강조하신다는데요, 우선 그 뜻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어허, 벌써 진도가 그렇게 나가게 되나? 맞아요, 내가 사람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 이야기야.

 

단도직입으로 가지. ‘성명쌍수(性命双修)’는 ‘성(性)’과 ‘명(命)’을 동시에 닦는다는 뜻이야. 선도(仙道)에서 주로 하는 말이지. 대개는 性 위주로 공부하거나 命 위주의 공부를 하지. 깨달음 공부가 性 공부라면 생명, 존재에 관한 공부는 命 공부지. 우리가 세상 사는데 각자 사명(使命)이 있을 텐데, 그것을 아는 것도 命 공부에 속하지.

 

선도에서는 깨달음(見性)을 그리 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나 깨달아 있고, 그것은 저절로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것은 불교에서도 그리 말하지 않던가? "깨달아 있지만, 중생(衆生)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야. 싯다르타 역시 "나는 부처라는 것을 알고 있는 부처요, 여러분은 부처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부처다."라고 했다지 않나? 의미심장하지?

 

선방(禪房)에서도 “깨달음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다(至道無難)”,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네.

 

선도(仙道)에서 명(命) 공부에 치중하는 이유는 命을 닦으면 저절로 성(性)도 닦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공부해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견성(見性)을 위해서는 깨우친 스승이 꼭 필요하다네. 아니면 주변만 맴돌다 말아. 물론 꼭 각(角)을 잡고 앉아 하루 여덟 시간 이상 면벽 수행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성(性)과 명(命)은 마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와 비슷해. 한쪽만 발전해서는 유용성이 없잖나? 하드웨어가 발전할 때 소프트웨어가 따라 발전해야 써먹지.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지 못하면 좋은 하드웨어가 돌아갈 수 없고, 좋은 소프트웨어가 기능할 수 없어요. 같이 발전할 수밖에는 없지. 性은 아는데 命을 모른다는 것은, 마치 로미오(Romeo)는 읽었는데 줄리엣(Juliet)은 못 읽었다는 것과 같아. 깨달음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가끔 命 공부를 폄하하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무지의 소치라 생각해. 썩어질 몸이라 해서 소홀히 해도 된다면 밥들은 왜 드시고 옷은 왜 걸치시는가?’

 

‘네, 잘 알았습니다. 잠시 쉬시죠. 노사님 정말 힘 좋으십니다. 좀 쉬었다 이야기 계속하시죠.’

 

(3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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