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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죽은 신(神)은 작용력이 없어, 젯상을 차려내도 먹지 못하고 단지 향음(鄕飮)만 할 뿐이다. 엔진과 밧데리가 없는 것을 자동차라 하기 어렵듯이, 사람(精氣神)이 죽어 정(精)과 기(氣)를 잃으면 사람이라 하지 않고 귀신(神)이라 한다. 하지만 무시해도 상관은 없는 존재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도(仙道) 수행은 비록 몸과 숨을 잃게 되더라도 神이 氣를 잃지 않아 작용력이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함이다. 믿든지 말든지, 그런 존재를 가리켜 신선(神仙)이라 한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처럼 답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철학자들 역시 직답을 피할 것이다. 기독교는 오직 조물주(神)에 대한 찬양이라 말할 것이고, 불교는 영원한 소멸(Nibvana)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우리가 만족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우리는 이미 삶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이미 서울에 도착해 있는 사람에게 왜 당신은 서울에 왔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물으려면 "이것으로 당신은 만족하는가?" 아니면, "다시 길을 떠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 묻는다면 사람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혹자는 "피곤하다, 쉬고 싶다"고 할지 모르고, 혹자는 "나를 여기에 오게 한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선..
움직임(동작)과 호흡을 연결해 보라. 호흡에 의식을 두어 보라. 에너지(氣) 흐름을 느낄 것이고, 점점 실(實)해지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선도(仙道)가 차별화되는 것은 그 중심에 에너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도를 닦으면 에너지를 느끼게 되고,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컨티션을 좋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킨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지 않다. 존재계 모두가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에너지를 다스리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단순히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산 자의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적 기대이다. 과학 역시 그 뿌리에는 영생이 있다. 영생불사는 선도(仙道)에서만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부활이나 윤회 역시 생명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인간이 죽음을 기피하는 이유는 끝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잊혀짐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仙道를 말하면 보통은 장생불사를 생각하지만, 궁극적 목표는 영생불사(永生不死)이다.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인간은 불가능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이루며 살았다. 인간의 내면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 입장에서 몇십 년 정도 命을 더 잇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기독이나 힌두 등등 주류의 신앙 형태가 존재의 불멸을 가르치는 것은 그런 맥락이다. 죽음을 찬양하..
기(氣)는 이론도 교리도 아니며, 신앙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며, 작용력이다. 그것은 기독이나 불교처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약하면 몸과 마음도 약해지고, 그것이 다 하면 죽게 되는 것으로, 가장 소중하고 가까이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다. 선도(仙道)의 차별성은 氣를 수행의 주체로 삼는다는 것이다. 氣는 몸과 마음을 연결해 작용들을 하게 돕는 것이다. 氣가 넉넉하고 잘 통하게 되면 건강해지고, 이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것이 성명쌍수(性命双修)이다. 아무나 氣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며, 아무나 氣를 길러 본래 자리를 회복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에게 삶의 의미는 없다. 각자 어떤 의미를 두고 사느냐가 삶의 의미다. 氣를 이해하고 그것을 닦아 부리며 사..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때 행복하다. 그런 이유로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행복한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으며, 그것을 찾는 능력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호기심은 창의성을 부르며, 그것은 우리를 에너제틱하게 살게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지루하지 않다. 그러므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게으르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행복은 찾는 사람에게만 다가오는 것이며, 관심의 눈을 들고 보면 세상은 행복꺼리로 가득하다. 행복을 얻는 데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 중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에 빠지는 순간, 그것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게 되고,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자기를 잊고 살게 될 것이고, 그..
코마(Coma)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반응(反應)이 없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것 역시 기운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도(仙道)는 존재(神)에 에너지(氣)를 계합(契合)시키고, 그것으로 우리는 양신(陽神: 에너지체)을 이룹니다. 깨달았다 할지라도 에너지를 모르면 무용지물입니다. 보통 사람처럼 몸을 버리고 나면, 작용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소멸(涅槃)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온(色受想行識)을 '단순히 인연(因緣)의 집합일 뿐, 존재라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에너지(氣)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에너지가 연결되는 순간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선도(仙道)의 핵심은 양신(養神)입니다. 양신을 위해서는 의수단전(意守丹田)이 필요하며, 그것은 의식(意識)과 에..
물질(몸)에만 치중하지 말고, 마음(神)만이 최선이라 하지 말라. 물질(돈) 우선의 사람을 저질이라 하고, 마음만 생각하는 사람을 저질이라 한다. 몸과 마음의 중간에 氣가 있는 정기신(精氣神)이 구족되어야 산 사람(生者)이다. 우리가 선도를 닦는 이유는, 기운 없이는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만 있는 것을 시체라 하고, 마음만 있으면 귀신이라 한다. 몸과 마음에 기운이 막히지 않고 잘 흐르는 사람이라야 건강하다.
알아챔 민정암과 함께하는 仙道(TCR) 특별 과정 TCR은 선도에너지 교실(Tao-energy ClassRoom)의 약자이며, 민정암 TCR은 민정암 공부 50년의 결실입니다. 민정암 선생의 내공(內功)이 실현(實現)되는 당신과의 일대일(1:1) 특별 장소로서, 기초 수련 후 당신은 매일(everyday) 원격(remote-control)으로 막힌 氣를 열고, 부족한 氣를 보충받게 됩니다. 참석은 선도연맹 회원에게만 허락되며(가입 필수), 외기방사(外氣放射)와 기침(氣針)이 시술됩니다. 내면(內面) 세계가 변하지 않고 현실(現實) 세계가 변할 수는 없습니다. 건강 문제가 있거나, 축기(蓄氣)가 필요한 사람(小周天 준비), 그리고 오염된 에너지, 즉 부정적인 기운(濁氣)의 빙의(憑依)로 운(運)이 자주 막..
최고의 물건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것은 아부(阿附)로도 살 수 없다. 최고를 가진 사람은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고의 도검장인(刀劍匠人)은 칼을 모르는 사람에겐 칼을 팔지 않는다. 명마(名馬)는 무지(無知)한 사람에겐 자기의 등을 내주지 않는다. 능력자는 진정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한다. 선도(仙道)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성경신(誠敬信)이 없는 사람은 선도(仙道)를 닦을 수 없다. 선도는 진수(眞髓)를 모르는 사람에게 비밀을 주지 않는다. 선도는 이 세상과 저세상 양쪽에 걸쳐있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딱 원하는 만큼만 자기를 진보시킬 수 있다. 선도를 건강법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건강법만을 얻을 것이고, 마음 편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마음 편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