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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수행에 몸의 움직임은 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의념만으로 단전을 깨우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수행이란, 몸과 마음의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이다. 단전이 열리고 나면 자연히 알게 된다. 모든 기맥(氣脈)이 단전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이다. 몸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막혀있던 기맥들이 열려야 그 기운이 단전 활성화로 연결된다. 외단공(外丹功)은 일반적인 운동과는 다르다. 그것은 단전과 온몸을 연결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단지 의념만으로도 수련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공부의 마무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란 것을 이해했다고, 그것을 깨달음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외로움, 우울함, 그리고 불안감에 자주 휩쓸린다면... 또한 ‘인정받음’에 우쭐하고, ‘인정 못 받음’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시각(視覺)이 늘 내면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멍하게 있어서는 마음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선도(仙道)는 의수단전(意守丹田)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기운을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시각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의수단전은 마음이 단전(丹田)에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우선 단전을 잠에서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막연한 것에 우리 시선을 향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복식호흡(腹式呼吸)을 단전호흡(丹田呼吸)이라고 오해해..
'나'와 '나의 것'을 구별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소유물은 나를 편리하게 해주지만,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습니다. 바뀔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임시로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 몸은 내가 아닙니다. 이 마음도 나는 아닙니다. 늘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없다(無我)'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 말하는 이유는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들 외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선도(仙道)에서는 '기(氣)'와 '신(神)'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변의 법칙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氣에 神에 관심을 가져보십시오. 불안이 없는 넉넉한 인생을..
오온(五蘊)을 '나'라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 '나'는 없다. 그것들은 조건에 의해 있는 것이므로, 조건이 다하면 자연 속으로 환원(還元)되고 말기 때문이다. 오온이 '나'라고 믿고 있는 그들에게, 당연히 '나'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웃고, 울고, 움직이는 것은 모두가 오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라. 우리 사람에겐 五蘊을 작동시키는 무엇(에너지)이 있고, 그것을 지켜보는 '무엇'이 있다. 만약, 당신 의식이 에너지(氣)와 지켜보는 자에 맞춰질 수 있다면, 영영토록 존재할 수 있다. 선도(仙道)에서 기(氣)를 중시하고, 氣와 신(神)을 계합(union)시키려 애쓰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그 조건이 충족되는 한, 당신은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산다.
'신행즉기행(神行卽氣行)'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가면 기도 간다'는 뜻이다.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마음이 덜 닦였기 때문이다. 수련을 하면 마음이 가는 곳으로 氣가 가는 것을 안다. 간단히 실험해 보자. 손바닥에 마음을 보내 고정해 보라. 그곳에 氣가 생기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손바닥에 마음을 보내 그곳에 氣가 머물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단전(丹田)에 마음을 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의수단전(意守丹田)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잘되지 않는 사람은 먼저 마음의 폭을 넓혀야 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마음을 닦는다고 한다. 마음을 닦으면 마음이 순수해진다. 그리되면 '된다', '안 된다'가 사라지고, 마음을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 氣는 간다. 먼저 몸부터..
수행에 몸의 움직임은 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의념만으로 단전을 깨우겠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편견일 수 있다. 수행이란 몸과 마음의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이다. 단전이 열리고 나면 자연히 알게 된다. 모든 기맥(氣脈)이 단전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이다. 몸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기맥들이 열리면, 그 기운이 그대로 단전 활성화로 연결된다. 외단공(外丹功)은 일반적인 운동과는 다르다. 그것은 단전과 온몸을 연결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단지 의념만으로도 수련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몸과 마음이 합해져야 큰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선도(仙道)를 닦는데도 50% 정도는 선천적 경향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구는 쉽고 누구에게는 어렵기 때문이다. 선도공부에는 일단 머리보다 몸이 더 중요하다. 좋은 감수성도 빼놓아서는 안된다. 따라서 무디어졌다면 다시 살려내야 한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가능한 대로 자연과 벗하며 살면 감수성이 회복된다.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어린아이이고, 그래야 기운 공부에 적합하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마태 18:3)" 너무 물질적(계산적)이지 않은 사람, 자연을 보고 쉽게 감동하는 사람, 기본적으로 자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호기심은 많으나, 선천적으로 의심이 적은 사람이 어린아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모두 감수성(感受性)이 풍부하지는 않다. 동의할지는 몰라..
선가(仙家)에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됨됨이가 되지 못한 사람에겐 전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누가 정하는가? 그것은 타인(스승)이 정하는 것이 아니요, 배우는 자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고, 스승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는 됨됨이가 된 사람이요, 조금 얻은 것으로 기고만장하여 스승 앞에 머리를 치켜드는 사람은 됨됨이가 덜된 사람이라 봐야 한다. 스스로를 높이는 자에게는 전하려 해도 전할 수 없다. 귀를 닫아 놓고 있기 때문에 몇 년을 스승 곁에 있어도 진전이 늦다. 그러므로 미리 판단하지 말고 쉽게 전해진다면 됨됨이가 된 사람이요, 애를 써봐도 전달하기 어려운 사람은 됨됨이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바른 제자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
인간에겐 두 개의 에너지 루트 체계가 있다. 그 하나는 심장이요, 다른 하나는 단전(丹田)이다. 심장은 후천지기(後天之氣)를 움직이는 센터요, 선천지기(先天之氣)의 센터는 하단전이다. 생명은 하단전에서 시작하지만, 폐로 호흡이 옮겨가면서 기운의 중심도 심장으로 옮겨가는데, 그때부터는 선천지기와 멀어진다. 수행이란 선천지기를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생명의 근원 자리인 본래면목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원동력은 하단전에 자리 잡고 있다. 선도를 닦으려면 소주천이 필수적이지만, 먼저 단전의 기능부터 회복시켜야 한다. 선천지기와 연결하기 위해서는 단전의 재가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전을 가동하지 않고, 단순히 의념만을 사용하는 소주천을 공차(空車)라 한다. 그것만으론 에너지가 ..
공장을 가동하려면 에너지가 없어서는 안 되듯이, 소주천(小周天)을 꿈꾸려면 기(氣)의 충실함이 필요하다. 자동차를 달리게 하기 위해서 잘 충전된 배터리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소주천을 원한다면 우선 단전(丹田)을 알아야 하고, 마음을 그것에 머무르게 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의수단전(意守丹田)이다. 먼저 외단공(外丹功)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호흡과 콤비를 이루게 만들어야 비로소 단전축기(丹田蓄氣)가 시작된다. 의수단전만으로는 소주천에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전에 압력이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임독맥(任督脈) 에너지 파이프라인에 탄력이 붙고, 그 길을 따라 에너지가 움직이게 되는데, 그것이 소주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