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15)
谷神不死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지 않아, 메타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 대접을 받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은 메타인지를 계발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정신작용을 가리켜 메타인지(Metacognition)라 한다. 메타인지가 가진 사람은 다각적인 사고를 한다. 그는 그 차원에서 자기관찰을 하고, 알아채고, 자기 통제를 한다. 그러므로 사소한 것으로 마음 상하지 않는 즐기는 인생이 가능하다. 학생이라면 성적이 오를 수밖에 없다. 맞는지/틀린지, 내가 알고 있는지/모르는지를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보기 때문이며,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 중, 어느 것이 우리를 더 성숙시킬까? 꽃길이 좋기는 하나, 꽃은 시들게 마련이고, 단맛보다 오히려 짜고 쓴맛이 입맛을 돌아오게 한다. 성공(승리)을 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실패(패배)에도 굴하지 않는 자가 진정한 성공자, 승리자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솔로몬(전도서 11장)의 말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일을 진행할 때는 진력(盡力)을 다할 뿐 성패에는 연연치 말라는 말. 일이 결말이 실망스러워도 내 할 바를 ..
깨달음을 가르치는 선생(스님)에게 물었다. "깨달으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그는 "질문이 틀렸다"라는 심오(深奧)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지성(知性)을 가진 자는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간다. 본능(本能)에만 의지하는 짐승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싯다르타가 출가(出家)한 동기는 혼돈과 고통의 해결이었고, 그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전해진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위해 돈과 시간을 바친다. 어떤 이는 인생 전체를 깨달음에 밀어 넣는다. 그곳에 있을 때, 그들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와 세상과 며칠 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진정으로 여여(如如)하게 지내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왜 그런가? 깨달음(?)만으론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에너지가 받쳐주지 못해..
선도(仙道) 공부는 퇴화한 단전(丹田)을 부활시키고, 소주천(小周天), 즉 임독맥(任督脈)을 관통시켜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일견 어려워 보이지만, 일심(一心)을 가지고 조금만 시간을 써보세요. 임독맥은 엄연히 존재하고, 단전 역시 살아있으므로 의지를 세우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밥 먹듯이 공부하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참고로 나는 하루 한 번 밥을 먹습니다. 불도(佛道) 공부는 더 쉽습니다. 자기가 누군지만 알아내면 끝나는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나'를 모르고 어찌 살아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공부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으로 90%가 완성됩니다. 나머지 10%는 끈기입니다. 어제 경주의 백운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왔습니다. 백운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
과거 사람들(특히 여자들)은 집안의 큰일(사업을 시작하거나 자식의 시험)을 앞두고는 절대 부정적인 말이나 걱정하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산속 사찰(寺刹)을 찾아 축원하거나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 놓고 잘되기를 빌었다. 걱정을 입 밖에 내는 것을 입방정이라고 했다. 큰일을 앞둔 사람, 특히 자기를 모두 투자한 사람은 마치 살얼음판에 오른 것과 같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묵묵히 지켜보거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강심장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떡하지?”라는 걱정하는 말은 도움이 안 된다. 심약한 사람은 그 한마디 말로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요한복음(1:1)에는 “말이 하느님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나 타인에게 부정적인 말은 삼가야 한다. 잠재의식은 걱정하는 말을 받아 그렇게 ..
사람이 사는 목적은 즐거움이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자살하지 않고 사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희망 없음이 확인되면 지구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기가 가진 명예와 소유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거움이 목적이다.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짜증이 날 때는 가급적 만남을 줄여라. 짜증은 자기에게나 상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이혼에 앞서 일정 기간 별거로 사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서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습관에 매어 삶을 허비하며 살지는 말라. 친한 관계에서 단지 아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피차 편하다면 미뤄야 할 이유는 없다. 우울 속에 마음을 담그고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외롭게 혼자 사는 것이 짜증 부리며..
부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일수록 사악한 기운에 취약하다. 늘 자기 마음을 점검해야 한다. 사악한 기운은 실제로 몸과 정신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부정적 기운을 이겨내려면, 첫째, 꾸준한 운동으로 통기(通氣)가 잘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기분 나쁜 사람과 장소를 멀리해야 한다. 셋째, 늘 바른 견해(正見)를 유지해야 한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다. 부정적 사고가 부정적 기운을 부른다. 늘 심신(心身)을 다스리면 주술사의 방법(念力)에도 걱정이 필요 없다. 심력(心力)이 강한 사람은 최면술에도 걸리지 않듯이... 자기를 신뢰하라. 늘 깨어있으라.
이성(理性)과 본능(本能)이 싸우면, 아마도 99% 본능이 승리할 것이다. 그 말은 이성적인 사람이 너무 적다는 말이다. 理性이란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하며, 本能이란 생물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삶에 이성보다는 본능을 우선 사용한다. 이성적(理性的)인 사람을 지성인(知性人)이라고 한다. 지성(知性)이란 ‘자기를 아는 것’이며, 지성인이란 ‘자기를 아는 사람’을 말한다. 교육이 필요한 것은 사회가 이성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본능이 지배하는 사회는 비리와 폭력이 난무하는 혼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권력자가 이성을 가졌다면 탄핵이란 말조차 없을 것이고, 재물에 이성이 대입된다면 비리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사회는 범죄가 힘을 쓰..
"소주천(小周天)을 이루고 나면, 남자의 양물(陽物)이 퇴화한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마음장상(馬陰藏相)'이란, 마치 말의 그것처럼 소중이가 숨겨진다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이와도 상관없다. 오히려 필요할 때는 더 긁어지고 단단해지기도 하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양기(陽氣)를 머리로 보내주는 '환정보뇌(還精補腦)' 때문이며, 깨우침의 기초가 되기 위해 일어나는 일이니 오히려 반가워해야 한다. 위로 기운을 보낸다는 것은 아래가 더욱 튼실해야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머리는 오히려 시원해진다. 양(陽)은 위로 오르며, 음(陰)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선도(仙道)는 불교와 달라 Sex를 죄악시하지 않는다. 고(苦)와 낙(樂)은 하나이며, 삶은 즐겨야 하는 것이라고 가..
누구에게나 불안은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있는 한, 심지어 깨달은 사람도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불안은 내 안에 경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불안할 때는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 찾아보세요. 찾아보아도 불안할 이유가 없다면 경보시스템을 OFF 시키세요. 불안은 길들일 수 있습니다. 우선 불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불안의 정체를 알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불안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불안이 허깨비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순간 불안이 닥쳐오더라도 알아차리는 순간 곧 평온을 되찾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몸에 집착하고 마음에 집착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습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즉시 불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