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15)
谷神不死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 4:17) ● 悔改란 무엇입니까? ○ 뉘우쳐(悔) 고치(改)는 것을 가르킵니다. ● 뉘우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잘못을 깨우침을 말합니다. ●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 無知가 가장 큰 잘못입니다. ● 무엇에 대한 무지입니까? ○ 善惡을 아는 것이 곧 무지입니다. ● 그럼 선악을 몰라야 합니까? ○ 그렇습니다. ● 무법천지를 말하는겁니까? ○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 그럼 선악을 모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선악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 선악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 眞理와 함께 살으라는 뜻입니다. ● 진리는 무엇입니까? ○ 時間, 空間과 관계없이 어디서나 통하는 것입니다. ● 어떻게 진리와 함께 살 수 있습니까?..
선도(仙道)는 기(氣) 공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外道(佛道, 儒道, 基督)들과 차별된다. 기는 만물을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그것의 적절한 운영으로 만물은 생장하고, 그것이 다하면 아무리 견고했던 것이라 하더라도 맥없이 스러지고 만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 그리고 기(에너지)가 흩어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셋 중 하나라도 부실하거나 분리되면 우리는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없다. 생명의 핵심은 기이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활력소이며 우리를 살게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고도의 정신세계와 강건한 육체를 가졌다 할지라도 기(에너지)가 떨어지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죽음이란 기의 기능이 정지되어 정신은 허공에 흩어지고, 몸은 분해되어 흙으로 ..
소주천(小周天)은 선도(仙道)의 중심행법이며, 세간(世間; 氣)과 출세간(出世間; 理)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그리고 그것의 주체(主體)는 정제(整除)된 에너지(氣)이다. 외도(外道)로 부터 소주천을 폄하하는 말을 들었다. 모든 것이 그 자리(空) 뿐(?)임을 강조하면서 은근히 소주천의 무용론(無用論)을 설파했다. 그의 말을 듣자면 선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므로 무시해도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는 '山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의 이치(理致)를 간과(看過)하고 있다. 불이중도(不異中道)를 외치고 있어도, 아직은 그 진수(眞髓)를 무시(無視)한 채 망상(妄想) 속에 있다. 그는 대승보살사상(大乘菩薩思想)에 무지하며, 공즉시색(空卽是色)은 물론, 누진(漏盡)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
주리(主理)는 이(理), 즉 이치(理致)와 법칙(法則)이 세상을 이끈다는 주장(主張)이며, 주기(主氣)는 이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세상(世上)을 이끄는 것은 이(理)가 아니라 기(氣)라는 주장이다. 주리파(主理派)는 이발기수(理發氣隨; 理가 먼저고 氣는 뒤를 따른다)라는 말로 主理를 설명하며, 주기파(主氣派)는 기발이수(氣發理乘; 氣의 작용에 理는 단지 동행한다)로 主氣를 표현한다. 당시 主理와 主氣의 대립은 사회 전반적인 현상이었으며, 수행인들 역시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 초기엔 主理(朱熹, 退溪)가 주도하였으나, 개화(開化)가 이루어질수록 主氣(奇大升, 栗谷, 丁若鏞)의 실학(實學)에게 사실상 우위(優位)자리를 넘겼는데 작금(昨今) 역시 세계적 세태를 보면 수행세계(修..
모든 견성공부(見性工夫)는 대상(對象)에 대한 몰입(沒入)으로 시작한다. 기도(祈禱), 지관(止觀), 간화선(看話禪), 관상(觀想), 염불선(念佛禪), 단전호흡(丹田呼吸) 등등 모든 수행(修行)의 귀결(歸結)은 사마디(Samadhi), 즉 삼매(三昧)이다. 선도(仙道)는 의식(意識)으로 氣(에너지)를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 의수단전(意守丹田)으로 삼매(三昧)에 이르고 그것을 통해 견성(見性)한다. *의수단전이 중심(中心)이 되어야 하는 이유: 氣는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양쪽에 걸쳐 생명력(生命力)의 원천(源泉)이며, 상대계(相對界)와 절대계(絶對界)를 수렴(收斂)한다. 氣는 본성(本性)에 가장 가깝다. 즉, 수련(修鍊)의 과정(過程) 중 모두가 유실(流失)되어도,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