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민정암 시리즈 (4) 깨달음에 대하여 본문

오희정의 인터뷰

민정암 시리즈 (4) 깨달음에 대하여

thedaywemet 2019. 12. 16. 08:00

‘우리 그만 일어나 커피나 한잔 마시러 갈까?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근사한 찻집을 소개하지.’

몇 걸음 떼자 장독대가 가지런한 넓은 정원의 웅장한 한옥이 나타났다.

 

‘정말 대단하네요. 인사동 ‘경인’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 누가 여기에 이렇게 멋진 전통가옥 찻집을 만들었을까? ‘드리우니’라..... 이름도 그럴듯하네요. 앞으로 강화의 명물이 되겠어요.’

 

요즘은 도농(都農)을 불구하고 커피숍 수준도 상향조정이 됐나 보다. 커피 맛도 나쁘지 않았고, 좌석도 편안했다.

 

* * * * *

 

‘오기 전에 노사님에 대하여 조사를 좀 하고 왔습니다. 신문에 소개된 것 외에 핫(hot)한 것이 하나 있던데요? 근간에는 불교(佛敎)의 영역을 침범하고 계신다고요? 상도의(?)를 어기는 것 아닐까요? 알고 지내는 불교대학의 한 교수님은 “선도(仙道), 태극권 하는 사람이 깨달음에 대해 알기는 알까? 단전호흡으로 깨달음이라! 요샌 개나 소나 깨달았다고 한다니까....” 하시며 은근히 비웃던데요.’

 

‘시방 그 교수하고 나하고 싸움 붙이는 건가? 그렇게 말하니 또 한마디 안 할 수 없구먼. 이야기 전에 우선 하나 물어볼 게 있어요. 태권도와 유도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글쎄요. 태권도가 이기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주먹이 더 빠를 테니...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오기자 주먹싸움해 본 적 없지? 우문에도 현답을 해야 한다네. 그 질문은 엄마랑 아빠랑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고 묻는 것과 같지. 하지만 이 질문은 답이 명쾌해. 태권도나 유도가 아니라 싸움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네.’

‘하하, 그렇네요. 노사님 알고 보니 아주 명쾌하신 분이세요. 유머도 아주 다양하시고.’

 

‘하나 더 물어보지. 한식 요리사가 인도 요리 대회에 출전하면 안 되나? 인도 가서 10년쯤 요리 공부하고 왔는데 말이야.’

‘안될 건 없지요. 그럼 노사님이 인도 요리사가 되었단 말씀인가요?’

‘그렇지. 나라고 깨달음 이야기 못 할 것도 없지 않을까? 불교에는 30대 초반부터 관심이 많았어. 당시 텍사스(Texas)에서 시작해 큰 인기를 끌었던 실바 마인드 컨트롤(Silva Mind Control) 선생을 하고 있었는데, 해인사(海印寺) 선승(禪僧) 한 분이 내 강의를 들었었지. 그분 말씀이 실바 메소드(Silva method)를 참선(參禪)에 응용하셨다는 거야. 물론 나중에 견성(見性) 인가(認可)까지 받으셨지?

 

나도 그때부터 화두를 챙기기 시작했으니, 내 공부도 40년은 되지 않았나? 불교식으로 말하면 법랍(法臘) 40년이니 한마디 해도 시빗거리는 못되지 않을까?’

 

‘그러셨나요? 그것도 남들은 모르는 이야기겠네요.’

‘오늘 오 기자에게 처음 공개하는 거야. 누기 뭐래도 나는 선도(仙道) 교사이니, 그것이 우선이지.

 

‘쉽게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세요? 깨달음이 뭐예요?’

‘귀 세우고 잘 들어요, 깨달음은 '지성(知性)'이야. 자기 성품(性品)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 쉽지?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주면 누구든 못 알아들을 리 없건만 그들만의 어려운 말 써가면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니 일반인에게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어요. 여태까지 해오던 방식으로는 선불교(禪佛敎) 간판 내려야 해요.’

 

‘그러게요. 선생님 덕에 눈이 떠지는 것 같네요. 이것도 시절 인연인가요?’

‘오 기자는 사람 말 끌어내는 재주가 있어. 언론인으로 대성할 거야. 보통 대학을 지성(知性)의 전당이라고 하고,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을 지성인(知性人)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대학졸업자치고 자기가 누군지 아는(知性)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굳이 소크라테스를 들먹이지 않아도 말이야.’

 

오래지 않아 깨달음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 될 거야. 그래야 인공지능(AI)을 부리며 살 수 있어요. AI가 못하는 유일한 것이 깨달음 견성(見性)이겠지? AI에게 없는 것은 영성(寧城)일 테니 말이야. 그때가 되면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AI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야. SF 영화 이야기가 아냐, 헛소리가 아니라고.’

 

‘노사님한테 그런 무서운 이야기 들을 줄 몰랐어요. 얼마 전 인공지능 전공하시는 교수님에게 얼마 안 가 기억력과 계산에 의존하는 직업은 모두 없어지게 된다는 이야기 듣고 기분이 후덜덜 했었는데 말이에요. AI가 창의력도 있대요.’

 

‘견성(見性) 이야기 전에 한 가지 바로 잡아야 할 것은, 깨달음은 불교(佛敎)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거야. 석가모니가 만든 것도 아니고, 신앙도 아니고, 그것은 마치 2×2=4, 2×3=6처럼 만국 공통의 것이야. 석가모니가 나름 깨달음의 문을 연 것은 사실이지만, 깨달음은 선도(仙道)에도, 유도(儒道)에도, 힌두에도, 기독교에도, 심지어 아메리카 인디언에도 이미 있었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 말이야. 알고 보면 석가모니도 그대 말대로 상도의를 어긴 이단아(異端兒) 아니던가? 당신 인도의 브라만교 입장에서 보면 말이야.’

‘그렇군요.’

 

‘내가 상도의를 어겼다니 한가지 이야기를 해줄게. 혹시 '최영의' 씨를 알고 있나? '최배달'이라고도 불리는 사람 말이야.’

‘네, <바람의 파이터>라는 만화로 본 적 있어요. 아주 재밌었어요.’

‘그 사람도 상도의를 어기고 일본 무예계를 제패한 사람이야. 나아가 세계의 파이터들은 물론, 황소하고도 싸워 이겼지. 그는 조선에 있을 당시 난장(亂場)에서 겨루는 택견을 조금 배웠을 뿐, 공수도(空手道)를 정식으로 배우지는 못했어. 당시 조선 사람은 무시당했었거든. 일본의 가라데(空手道)는 실전보다는 이론이나 폼에 너무 의존하고 있었지. 그는 그것을 리모델링한 거야. 일본 최고의 검객(劍客)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를 본받아 입산하여 독학(獨學)으로 익혔다고 해. 나중에 '극진가라데(極眞空手)'라는 이름의 실전 무예를 만들었지. 가라데의 허점을 보완해 체급과 호구(護具)를 없애고, 주먹으로 어디든 가격할 수 있게 한 거야. 그는 1951년 3월 도쿄에서 유도 검도의 최고수와의 대결을 시작으로 세계적 무술의 고수들과 100번이 넘는 결투를 벌여 한 번도 지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 왜 이 이야기 하는지는 눈치챘겠지?’

‘그럼요, 물론이지요. 그는 정말 대단해요. 이 땅에서 박세리, 김연아, 손흥민이 나오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겠군요.’

 

‘불문(佛門)에 몸담고 있지 않은 사람이 깨달음 이야기를 한다고 백안시(白眼視)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담 안에 있어서는 집의 본 모양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울 수도 있어요. 오히려 담 밖에서 멀리 떨어져 보는 것이 건물 전체를 볼 수도 있는 법이지.

 

깨달음 공부는 인도를 떠나 중국에 와서 간화선(看話禪)으로 일취월장했어요. 이른바 새롭게 꽃을 피우게 된 거지. 요즘은 근본불교라 부르는 초기 불교의 깨달음은 부분적이라고 생각해요.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은 후 숲속에 들어가 마지막까지 세상과 유리(遊離)되어 머물라고 가르쳤잖아? 이른바 상좌부(上座部) 불교지. 요즘 생각으로 보면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러게요.’

 

그들의 깨달음 가르침 방법은 너무 난해해서 일반인들이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어. 나중에 <청정도론>이란 책을 한번 읽어봐. 인도의 불교가 힌두교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만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 내 힌두 친구들은 석가모니를 가리켜 '도도히 흐르는 갠지스강에서 튀어나온 한 방울의 물'이라고 하더군. 힌두(Hinduism)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관심들을 두지 않아서 그렇지, 어려운 것 없어요. '깨달음(見性)'은 너무나 간단한 것이에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깨달음이란 자기가 누군지를 찾는 것, 그것뿐입니다. 사실은 찾을 필요도 없지. 어디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일 웃기는 이야기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이에요. 자기를 찾으러 히말라야를 가고, 미얀마도 간다는 사람이 꽤 많던데, 나를 찾아 왜 여행을 떠나야 하나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나잖아요? 언제 어디 가서 잃어버렸었나?

 

유명한 신심명(信心銘)에서는, “도에 이르기는 쉽다(至道無難)”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고, 육조혜능(六祖慧能) 역시,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不思善不思惡). 너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은?!”이라는 한마디로 도명에게 즉석(卽席) 깨우침을 주었죠. 초기의 석가모니처럼 말이야. 다시 하는 이야기지만,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 “간장 맛 짠 줄만 알면 깨닫는다”라는 말은 너무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고....

 

어려운 것 없어요. 심하게 이야기해서 루저(loser)들이 “어렵다, 힘들다, 머리 깎고 출가(出家)해 세상을 떠나 10년을 닦아도 어려운 것이 깨달음이야,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우리를 봐.”라고 엄살떨며 아무나 접근을 못 하게 하니 그렇지, 관념(觀念)의 가림막 걷어내고 생각 없이(don’t think), 그냥 보면(just look), 바로 깨닫게 되는 겁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 마세요. 견성이란 것이 하늘 땅을 바꾸는 재주를 부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기의 본면목(本面目)을 찾아 정신적, 육체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게 되는 것뿐입니다.

 

석가도 말했잖아요. “나는 고(苦)와 그 지멸(止滅)에 대해서만 말한다”라고....’

 

‘그런데 어떻게 생각 없이 그냥 볼 수 있나요?’

‘어떻게는 뭐가 어떻게? 정해진 방법 없어요. 명상(冥想)으로는 안 되는 일이고, 고행(苦行)으로도 안 돼요. 석가모니가 6년을 그 짓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잖아요? 오 기자도 1월 11일 강의에 참석하도록 해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모여 이것저것 실습도 좀 해보도록 할 테니....’

 

‘네, 꼭 참석할게요. 이거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네요. 과연 소화가 될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너무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4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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