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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과 보살의 차이 본문

Taiji Yoga/13. 신선이냐 열반이냐 (To live or to vanish)

신선과 보살의 차이

thedaywemet 2020. 9. 13. 08:00

 

신선(人仙)이란, 불도(佛道)에서 말하는 보살(菩薩)과 개념적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선도(仙道)는 신앙(信仰)이 아니므로, 꼭 지켜야 할 계율(戒律)은 큰 의미가 없다.
 
보살이란 깨달은 자(Bodhi)와 중생(Sattva)의 두 가지 캐릭터가 합쳐진 것으로,

중생들을 모두 제도한 후에 열반(Nirvana)에 들 것을 결심한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보살과 신선은 일맥상통한다.
 
보살에게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이 있으나,

신선에게는 그 결이 다른 자연무위(自然無爲)가 있다.
 
육바라밀의 첫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은 다분히 억압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신선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신선에게는 '억지로'가 없으며, 남이 눈치를 보아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법은 없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 동하여 보시를 하며,

정해졌기에 계(戒)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천리(天理)를 따라서 법을 지킨다.

늘 사물을 바르게 보고 행동하려 하기 때문에 억지로 참는다(忍辱)는 것은 가당치 않다.
 
나머지 부분,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는 비슷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신선은 육바라밀보다는

팔정도(八正道: 正見, 正思,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적 삶을 산다.
 
사실상 팔정도는 정견(正見) 하나로 끝난다.

견해(見解)가 바르게 틀 잡혀 있을 경우,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신선과 보살 사이에 그런 차이가 나는가 하면,

보살은 소속이 신앙 단체인 불교(佛敎)이며, 신선은 행복을 구하는 선도(仙道)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하나하나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소속 정당이 정해놓은 정견을 싫어도 따르게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선 본인의 생각에도 부당한 주장에 도매금으로 거수(擧手)를 하기도 한다.
 
신선은 자연무위를 모토로 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억지로 하는 보시는 없으며(布施),

억지로 지켜야 하는 계도 없고(持戒), 눈치 보아가며 참는(忍辱) 법도 없다.

달리 말하면 무소속인데, 유도(儒道)의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자신의 취향을 따라 菩薩의 길을 갈 수도 있고, 神仙의 삶을 살 수도 있다.

각자 자기 좋은 대로 선택하면 된다.
 
하라고 한다고 하지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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