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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자에게도 공부가 필요한가? 본문

Taiji Yoga/3. 깨달음 (Enlightenment)

깨달은 자에게도 공부가 필요한가?

thedaywemet 2020. 7. 13. 08:00

늑대 소년 이야기가 있다. 늑대들에 의하여 성장한 한 소년이 인간 세상에 돌아와 일어나는 일들을 엮어낸 것이다.

 

본인이 늑대가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을 깨우쳤다고 해서 바로 그 즉시 모든 인성(人性)이 회복되지는 못한다. 제대로 숟가락질도 하지 못하고, 화장실 사용하는 법도 모르며, 보름달이 뜨면 뒷산에 올라 습관적으로 “우~” 하고 늑대 울음을 할 것이다.

 

내 주변에는 부모처럼 모시던 큰스님을 떠나 그가 열반(涅槃)하고 난 지금도 그녀의 법해(法解)에 대하여 의심한 나머지 심지어 ‘마구니’라고까지 부르는 불교 경전(佛敎經典) 연구가가 있다.

 

어떻게 그리할 수 있느냐고 그를 비난하기에 앞서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그녀의 깨달음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경전(經典)에 대한 그녀의 해석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다. 경전 연구가들처럼 세세히 경전의 내용을 따지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녀의 행위를 보면 보통 사람들은 흉내도 못 할 일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낸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을까 실로 가늠이 되지 않는 일도 많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랐던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개인행동 한가지 한가지라든지, 신도(信徒)들을 대하는 태도는 과연 부처님이라도 저리 살가울 수 있을까 할 정도다. 

 

그녀에게 감복(感服)하지 않는 신도는 거의 없었고, 그녀를 만나 용돈을 얻어 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부족한 나도 가끔 받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경전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하여 선원(禪院)의 용어(用語)를 왕왕 잘못 말하였으며, 더러는 기독(基督)에서 채용한 개념(槪念)을 불교(佛敎)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도들의 마음을 든든히 하고, 신심(信心)을 돈독하게 해주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으나, 원리적(原理的)으로 경전(經典)을 읽은 사람으로서는 그녀의 정체성(正體性)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석가모니는 경전에 쓰여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의심을 늦추지 말라고 했지만, 그 문제와 이 문제는 다르게 봐야 한다. 충분히 경전과 교리를 검토한 후 자체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읽지 않고 배우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는 한가지로 밀어붙이는 것은 스스로 밝다는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깨닫고 나서도 공부해야 한다. 시간 나는 대로 경전(經典)과 선지식(善知識)들의 어록(語錄)을 살펴야 한다. 본성(本性)을 깨우치는 것과 다르게 교리 체계(敎理體系)는 똑똑한 사람들에 의해 정리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원법(原法)에 입각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뒤로 미루기로 하고 말이다.

 

일부에서 거의 부처님과 동격(同格)이라고 떠받들던 한 비구(比丘)는 종정(宗正)의 위치에서도 늘 독서에 열중했다고 전한다.

 

제자들에게는 책을 보지 말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나는 내가 책을 보지만, 너희들은 책이 너희들을 읽기 때문”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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