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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은퇴 후에 꼭 해야 할 일은 '내가 누군지를 아는 일'이다. '에고를 죽이라'느니, '나는 없다'라는 말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다분히 관념적이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을 거두고 나를 찾기 위해 인도나 미얀마에 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어디를 가지 않아도, 꼭 쭈그리고 앉아있지 않아도, 여기 성성히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찾고 나서 시간이 남거들랑, 에너지(氣)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에너지를 모른다면 늘 휘둘리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인터넷 등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이거다" 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그럴듯한 글에는 현혹되지 말라. 체험이 아닌 단순한 복사글일 수 있다. 에너지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시간과 정성을 할애하지 말라..
시체도 생명(生命)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썩어서 사라져 버리는 데도 말입니다. 관념(觀念)은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죽음 후에도 영혼(Atman)은 살아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죽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존재는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는 한 유지되는데 말입니다. Battery가 방전되는 순간 자동차가 아니듯이, 에너지가 끊기는 순간 우리는 살아있지 못합니다. 죽음이 경험되지 못하는 것은 의식(意識)마저 끊기기 때문입니다. 해석은 자유입니다만, 그 상태를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골(空)이란 에너지(氣)입니다. 에너지의 성질이 텅 비어(空) 보이기 때문입니다. 견성(見性)이란 의식과 그 의식의 바탕(氣)을 알아챈 것입니다. 그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 공적영지..
사람은 자기에게만 사랑을 쏟아 주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도록 되어 있다. 이름난 바람둥이의 특징은 여러 연인과 상대하면서도 그의 모든 사랑을 자기만 받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전설처럼만 전해진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가지 것을 동시에 밀도 있게 생각할 수 없다. 단지 생각을 빨리 이동시키고 있을 뿐이다. 수행자(修行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에너지(氣)가 분산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제자는 마땅히 성경신(誠敬信)을 배양해야 한다. 정성과 존경, 그리고 믿음 말이다. 그것에는 원하는 것을 끌어오는 힘이 있다. 심은 만큼만 거둔다. 세상은 수수관계(授受關係), 즉 'Give a..
남들이 갖지 못한 것, 나만의 소유가 있는 사람은 느긋하다. 값비싼 명품(名品)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그것처럼 말이다. 누구도 부러워하는 미모(美貌)의 부인을 둔 사람이거나, 남다른 능력(돈과 권력)의 남편을 둔 사람, 그 둘은 한동안은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런 사람들은 조바심치지 않는다. 자존감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절륜의 정력을 가진 남자, 소위 명기(名器)를 지닌 여성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매력이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유한(有限)하다. 조만간 시들어 버릴 것들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돈이 없어도, 집도 절도 없어도, 당당하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 썩지 않을 보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깨달음이 있다 할지라도 기력(氣力)이 없..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이 있다. '동쪽에서 소리 지르고, 서쪽을 친다'는 말이다.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얻는 방법은 그것에 너무 에너지를 크게 쓰지 않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이해하라, 사람을 움직일 때는 강요하지 말고, 상대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라.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던 손해 볼 일은 없다. 매달리지 말라. 그리하면 상대는 당신을 업신여길 수 있다. 늘 여유 있고 당당하게 연출하라. 그것이 확실한 승리의 길이다.
선도(仙道)는 '깨달음(見性)'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단전(丹田)만을 지키라(意守丹田)'고 한다. 선도는 '지관(止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들이 止(사마타)로 시작해 觀(위빠사나)으로 끝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몰입(沒入)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단전에 마음을 두는 것만으로 힘쓰지 않고 내면세계에 몰입(三昧)한다. 특별한 자세(정좌)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기를 일으켜 몸을 다스리는(調身) 일련의 동작들이 있으며, 숨을 조율하는 법(調息)이 있고, 기의 흐름을 관조하는 것으로 마음이 안정(調心)을 찾는다. 사실상 그것들 모두는 한통속으로, 우리를 해맑고 고요한 자리(空寂)로 인도한다. 선도는 세인(世人)들에게 건강 장수법 내지는 신통력 개발법으로 알려졌지만..
'조현병'이란 2010년 3월 이전에는 '정신분열증'이라 했는데, '분열(分裂)'이란 단어가 부정적 의미가 크다는 이유로 대한의사협회에서 개명한 것이다. 조현(調絃)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조현병은 현악기의 줄이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해져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는 뇌(腦)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판단해 정신과적 약을 처방하지만, 사실 자기 마음을 알아채기만 하면 쉽게 해결되는 병이다. 마음은 내가 아니며, 우리에겐 우리 마음을 바라보는 '주시자(注視者)'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보통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다가 마음을 가라앉히면 조용히 드러난다. 그 주시자가 우리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주시자가 활성화 되면 자기 마음을 자기가 조절할 수가 있..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깨달음만 있으면 만사가 형통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깨닫고 난 사람들도 조만간 다시 부족함이 생겨나는 것을 안다. 늘 말하지만, 이(理), 즉 성(性)은 기(氣)가 작용을 해줘야 제대로 행세가 가능하다. 불도(佛道)에 심취하여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성명(性命)에 대하여 이야기해 줘도 무아(無我), 연기(緣起)만을 반복하여 말할 뿐이다. 그들을 억지로 설득하려 들지 말라. 하지만 그가 일단 깨달음을 얻고 나서 그것이 무미건조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스스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았어도 여전히 삶이 녹록지 않고, 소화불량에 순환장애, 혈당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배가 고프면, 우선 밥부터 먹어야 한다. 아무리 밥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외쳐봐야, 아무 ..
세상에서 가장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배우자일 것이다. 상대의 방해에 못 이겨 중도에 수행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으니 말이다 학대받고 살면서도 성인위(聖人位)에 오른 사람이 있고, 공자는 오히려 괴팍함으로 아내를 구박하며 살았다고 한다. 고행을 감수하지 않고 어찌 수행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집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저항하지 말고 묵묵히 인내하는 것도 공부다. 쉽지는 않겠지만, 심적 압박들을 모으고 모아 에너지(氣) 폭발의 기회로 삼아라. 그것을 공부의 동기부여로 삼으라. 그리한다면 미혼으로 살았던 예수보다, 가출했던 석가보다, 더 큰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너무 힘들다면 졸혼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수행을 제일의 가치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 졸리면 자야 한다. 부족하면 채워야 한다. 지저분하면 치워야 한다. 더러워지면 씻어야 한다. 명상이 필요하면 그 속에 잠겨야 한다. 배가 부르면 그만 먹어야 하고, 부족한 만큼만 채우고, 더러워졌을 때만 씻으면 된다. 그런 것은 중독이라 하지 않는다. 명상은 습관화할수록 좋다. 속세의 삶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쫄리게 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심신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할 때 단전 명상(丹田冥想)을 한다. 일과 중 피곤할 때, 정리가 잘 안되어 뒤숭숭할 때,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딸릴 때, 단전 명상으로 심신을 회복시킨다. 3분도 좋고, 10분도 좋고, 그러다 깜박 잠이 들기도 한다. 명상 후엔 너무 개운해진다. 에너지가 샘솟는다. 새로워진 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