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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예수가 제자들에게 널리 전하라고 한 Good news(福音)는 "믿으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겠고(요한 11:25), 혹 죽는다면 천국에 살 것이다"였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자기(眞我)가 누군지를 깨우치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밝은 미래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를 얻으면 스스로 자기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저는 믿으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확인하라고만 합니다. 물론 확인하고 안 하고는 당신의 자유이지만 말입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이 납니다. 생각이 말을 만들고, 행동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행동에 따라 결과가 나옵니다. 늘 자기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시(注視)하십시오.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자리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그것이 깨달음을 얻는 지름길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만사(萬事)를 일으키고, 꺼지게 하는 자리입니다.
석가모니가 집을 나선 이유는 고(suffering)의 해결이었다. 그러므로 불교의 목표 역시 고(苦)의 원인이 되는 집(集)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 결과가 무소유이다. 선불교(禪佛敎)는 苦를 건너뛰어 자성(自性)을 알아채는 데 정성을 쏟는다. 자성을 깨우치는 순간, 苦는 붙을 여지가 없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석가와 맥(脈)을 같이 한다. 예수에 고착함으로 苦를 해결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너스로 사후 천국까지 소망해 볼 수 있다. 불교가 나머지 모든 신앙들과 다른 것은 "나라는 것은 없다(無我)"이다. 그것으로 모든 고통이 무효가 되지만, 즐거움을 누릴 당체(當體) 역시 사라지고 만다. 선도의 특이한 점은 숭배의 대상(하느님, 부처)이 없다는 것이다. 몸(精), 에너지(氣), 그리고 의식(神)..
당신은 어떤 종류의 믿음이 있는가? 국어사전에서는 믿음에 대한 정의를 아래와 같이 두 가지로 하고 있다. 1.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2. 대상(종교)에 대한 신자로서의 태도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는 마음 사실이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므로, 믿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 믿음이란 첫째로는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사람 사는 데 필요한 일이며, 두 번째는 신앙조직에서 상정한 절대자를 대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신앙단체의 유지에 필수적인 것으로, 믿음이 없으면 조직은 무너진다. 보통 신앙과 종교를 동의어로 사용하지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식의 소치이거나 자기 신앙에 대한 과포장이다. 믿음처럼 모호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것은 없다. 그것을 위해 목숨도 바치지만, 그것처럼 배신이 흔한 것도..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었는가?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는가? 천당과 지옥은 존재하는가? 혹시 그런 것들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크리스마스 전날 밤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으로 들어오신다고 알고 있는 세 살배기 아이와 같다. 믿음이란 단지 선택일 뿐이다. 그냥 그렇게 믿기로 생각하는 것이 믿음이다. 세상에 믿을 것은 거의 없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늘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관심 가질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당신 자신, 즉 믿기로 하는 그 마음(안 믿기로 하기도 하지만...)뿐이다. 좀 더 엄밀히 말한다면, 생각들이 모두 제거된 오락가락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本來面目), 그것은 변하지 않으며, 세상의 시작이고 끝이다. 그것으로부터 세상은 일어나고 꺼진다. 그것이..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 그것은 부모 자식 간, 친구 간이나 스승 제자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의심은 의심스런 일의 결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의심의 에너지는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가장 먼저 자기 마음을 살펴봐야 한다. 그것에 따라 주변의 에너지가 변하기 때문이다. 늘 자기 관조(觀照)를 늦춰서는 안 된다. 믿음을 주도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꼭 그릇 크기만큼만 받는다. 그것은 우주의 이치다.
우리에겐 형체는 분명치 않아도,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마음이라 하며, 천변만화를 일으키는 바로 그놈입니다. 그놈 속에는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이미 갖추어져 있어서, 비우면 비울수록 그것의 기능이 형상됩니다. 비울 것은 생각들과 그것이 굳어진 믿음이란 놈입니다. 그것들이 쓸어내지면, 그 자리엔 자성(自性)만 남습니다. 그 쓰레기들(생각들과 믿음)은 분명 일시적으로는 유용했었지만, 그것들은 마치 점령군과 같습니다.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음 비우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두들 마음으로 마음을 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검사(檢事)의 범법을 한통속의 檢事들로 밝히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죽음입니다. 세상엔 그 문제를 해결한 두 분이 계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하나 있습니다. 두 분 중 하나는 예수입니다. 그리고 그에 의해 생겨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1장 25, 26절) 아주 간단합니다. 믿기만 하면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26절 끝에 말합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타르타, 즉 부처입니다. 그리고 불교는 그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생겨난 종교입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구구한 이야기는 빼겠습니다. 그의 깨달음의 중심은 “나는 없다” 입니다 그가 이룬 깨달음의 핵심 삼법인..
나에게 없는 것을 하늘에 구하지 말라. 내가 누군지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 당신이 필요한 것은 모두 당신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건강을 구하고, 돈을 구할 때, 그것은 당신에게 그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늘은 현재이며,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을 실현시킨다. 이미 이루어진 결과만을... 그 속에 당신이 있고, 그것들을 즐기고 있는 당신을 보게 될 때, 하늘이 움직인다. 애원하지 말라.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라. 이것이 마음을 당신의 수하에 두는 비결 중의 비결이다. 당신이 하늘임을 알라. 그저 명령하고 기다리기만 하라. 조련된 마음이라면, 그 명령대로 즉시 시행할 것이다.
소출(所出)이 적다고 섭섭해하지 말라! 딱 씨 뿌려 가꾼 만큼만 거두게 되어있다. 누가 날 섭섭히 대할 때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한다. 만사는 내가 정성 들인 만큼만 돌아오게 마련이니 말이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 하지 말라. 평년작만 되어도 대박이다. 잘못해서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사람도 있다. 조그만 것에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늘은 감사하는 사람에 더 많은 것을 선사한다. 늘 스승을 따라 게으름 피우지 말고 꾸준히 닦아야 한다. 세월은 결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