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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일러라, 일러라.” 공부처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겁니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수행이 무르익어 터질 때가 다된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에겐 너무 버거운 말이다.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자. 상대의 눈 높이에 맞춰 말해야 한다. 수행 길에 나선 많은 사람들이 헤매는 이유는 알아듣기 어려운 추상적인 말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라. 진리(眞理)는 어렵지 않고, 추상적이지도 않다. 깨달음을 위해 신앙에 귀의하거나, 굳이 생업과 가족을 버리고 산으로 갈 필요는 없다. 그것이 우리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가치가 없다. 수행자라 할지라도 역시 생활인일 수밖에 없다.
믿음이란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에 대해 실제성을 부여하는 것(바라는 것의 실상)이며, 나타나지 않은 것을 증거(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채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스스로 선택했든, 타인에 의해 유도되었든 매우 주관적인 것이며, 설명이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강요이다. 그 믿음이 혼자만의 것일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강요되는 절대적 信仰(우러러 받드는 믿음)으로 탈바꿈 되고나면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나는 믿음을 신앙으로 바꾸는 자들을 잘 이해한다. 그것이 그들의 재산과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와 眞理를 동의어로 만들고, 신앙을 종교(宗敎)라 주장하지만 결코 믿음이 진리일 수는 없으며 신앙이 종교일 수는 없다. 우리는 무엇이든 믿을 수 있지만 ..
眞理는 모든 것이다. 진리에는 진리이고 진리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진리이고, 저것은 진리가 아니라 하면 이미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사랑이다. 진리의 눈에는 모두가 하나로 보인다. 진리는 시기 질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는 다투지 않는다. 진리는 하느님이다. 진리에는 선악이 없다. 진리는 나누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에게는 다툴 대상이 없다. 진리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모두가 그로 비롯되었으며, 모두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문제다. 그들은 하느님을 욕보이고 있다. 언제나 하느님은 내편이고, 나의 믿음을 반대하면 그것은 하느님과 적이 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에게도 벌을 주지 않는다. 하느님은 사랑이며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 4:17) ● 悔改란 무엇입니까? ○ 뉘우쳐(悔) 고치(改)는 것을 가르킵니다. ● 뉘우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잘못을 깨우침을 말합니다. ●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 無知가 가장 큰 잘못입니다. ● 무엇에 대한 무지입니까? ○ 善惡을 아는 것이 곧 무지입니다. ● 그럼 선악을 몰라야 합니까? ○ 그렇습니다. ● 무법천지를 말하는겁니까? ○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 그럼 선악을 모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선악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 선악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 眞理와 함께 살으라는 뜻입니다. ● 진리는 무엇입니까? ○ 時間, 空間과 관계없이 어디서나 통하는 것입니다. ● 어떻게 진리와 함께 살 수 있습니까?..
한국어에서 단순히 '안다'로 말해지는 것에 대해 영어권 사람들은 know, see, get, have, understand, realization, cognition 등등 그 표현이 매우 다양하다. 여기서 know와 see의 차이는 하늘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하늘과 땅은 붙어 있어 사실상 구별이 모호하지만 그 둘을 하나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보통 'I know'와 'I see'를 두리뭉실 혼용하지만 따져보면 그 차이가 천지보다 더 큼을 알게 된다. 같은 "안다"는 말이지만, know는 속세(俗世)의 표현법이고 see는 출세간(出世間), 즉 깨달음의 언어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볼(see)때 단순히 보지(just look) 않고 기존의 지식으로 여과하여 저장한다. 즉시 과거형으로 바뀌는 속도가 ..
진리는 말하는 순간 그릇된다. 그리고 진리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을 해친다. 소크라테스, 그는 당시 그 나라에선 '모른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쉽다. 그가 '모른다'와 조금 더 친했더라면... '생각없음'이 진리임을 깨달아, '오직 모를 뿐...' 이었더라면... 재판정에서 주저리 주저리 변명을 하지는 않았었을텐데... 조용히 글 몇 줄을 남기고 사라졌더라면...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무지함을 깨우쳐주는 오류(?)를 범하지만 않았었더라면... 최소한 사형선고는 받지 않았으리... 고집부리지 말고 친구의 말에 따라 탈옥만 했더라면, 사약을 마시지 않고 천수를 누리었을텐데... '이것이 진리다', '저것이 진리다' 하면 틀린다. 어리석은 자가 진리를 누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