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Taiji Yoga/13. 신선이냐 열반이냐 (To live or to vanish) (20)
谷神不死
"엽전이 뭘 할 수 있어?" 불과 몇십년 전,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비하(卑下)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스승님의 "곧 한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가 될 거야"라는 말씀은 쉬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조선은 이미 상등국(上等國)이 된 듯싶습니다. 첫 번째로 느낀 것은 타국의 공항에 내렸을 때였습니다. 한국의 공산품, 자동차, 선박, 전자 제품, 반도체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제의 최고상을 받고, 한국 가수들이 세계 위에 우뚝 섰습니다. 오늘은 우리 축구가 세계 대회를 제패할 뻔했습니다. 그것으로 상등국이 된 것일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여야 할까요? 한국의 정신, 한국의 사상, 한국의 깨우침, 한국만의 신선사상(神仙思想)으로 세계..
처음엔 사사건건(事事件件) 의식하며 살려고(깨어있으려) 애썼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견처(見處)를 확인하고 나서도 일어나는 경계(境界)에 더러는 깜박 속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습니다. 한참을 흐르고 나니 보이고 들리는 것 하나하나가 見處 아닌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가 무르익었나 봅니다. 바람 불어도 좋고, 비가 와도 좋았습니다. 맑게 갠 날은 그런 날대로 좋습니다. 그야말로 일없는 사람(無事人)으로 소풍 같은(逍遙遊)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2019년은 한국에 특별한 해이다. 남북 해빙 이야기보다는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기는 해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그것은 정신개벽(精神開闢)의 시금석(試金石)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물질보다 마음이,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하지만 內心은 다르다. 그들의 마음속엔 무엇보다 돈이 최상위에 자리하고 있다.생활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3만 불의 시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최소한 먹고 입는 문제로부터는 벗어난 삶이 된다는 뜻이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반면에 부정적인 측면도 피할 수는 없다. 3만 불은 그동안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만을 위해 달려왔던 사람에게는 혼란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태함도 나타날 것이고, 알코올 중독이나 자살률도 늘어날 ..
사람은 영적(靈的) 존재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짐승(禽獸)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사람에게서 靈的인 부분을 제하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공부하는 것은 좋은 직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만이 가진 원래 품성(品性)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어떤 급수의 사람이 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1. 짐승처럼 먹고, 입고, 재산 모으고, 번식하고, 힘자랑하는 데만 열중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이 그리 살지만 벗어나야 할 최저의 계급입니다. 2. 논리와 합리를 중시하며, 법을 지키며, 이타적(利他的)으로 자기를 제어하며 살 수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만이 그렇게 삽니다. 짐승보다 한 단계 높은 계급입니다. 3. 靈的 생활에 시간을 넉넉히 할애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衣食住는 기본적인 것..
태극권(太極拳)은 양루찬(楊露禪) 노사가 중국 무술대회를 10회 석권했을 때, 각 문파(門派)의 장문인(掌門人)들이 그를 칭송하며 지어 바친 이름이다. 양노사(楊老師)는 원래부터 출중한 덕성(德性)을 지닌 인물로, 청년 시절부터 선도(仙道)에 뜻을 두고 여러 스승을 찾았다. 심법(心法)과 기공(氣功)을 동시에 공부하면서 무술(武術)에도 관심을 두어 권법가들에게도 예의를 갖추며 배웠다. 태극권은 원래 신선(神仙)들의 행공(行功)이었지만, 거기에 무술적(武術的) 요소가 가미된 것은 혼란된 시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요함을 강조하고 불문(佛門)의 사람들도 '움직이는 선(禪)'이라 부르며 애호한다는 점, 그리고 그와 겨루었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 상해(傷害)를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점, 그리..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어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모두 적용된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개인 소득 중심경제냐 전체 소득 중심경제냐, 수구(守舊)냐 개방(開放)이냐 등 말이다. 그것은 신앙(信仰)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독(基督)을 말하자면 구교(舊敎)/신교(新敎), 불도(佛道)라면 상좌부(上座部), 대승(大乘), 아니면 선불교(禪佛敎), 이슬람이라면 시아파/수니파로 나누어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사람은 완전한 깨우침을 얻기 전에는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도록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열반(涅槃)과 해탈(解脫)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자. 이 사안(事案)은 전에도 다룬 적이 있으나, 엄연히 다른 두 단어의 의미를 두루뭉..
윤회(輪廻)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열반(涅槃)이다. 열반에는 유여열반과 무여열반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는 이 세상에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걱정 없이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고, 후자는 실제로 죽어 흔적 없이 존재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 수행자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혹시 수행에 성공을 거두면(有餘涅槃), 해탈을 얻어 대자유 가운데 세상을 활개 치며 살 것이고, 깨닫지 못한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죽어 흙이 되고 나면 그대로 윤회에서 벗어난다(無餘涅槃)는 소식을 알리고 싶다. 혹시 불행하게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뇌 속의 메모리가 완전히 삭제되어 윤회를 한다고 해도 엄밀히 그것은 윤회가 아닌 새판이기 때문이다. 금고 속에 백억이 들어있다..
해탈과 열반은 결론부터 말하면 다른 말이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혼용되고 있지만 말이다. 해탈(解脫)은 어원이 산스크리트어 'moksha'이며, 그것은 '삶에 닥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대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어떤 일도 고통이 되지 못한다. 그 모든 것들이 단지 신의 장난(릴라; lila), 헛것(幻)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 마쳤기 때문이다. 열반(涅槃; nirvana)은 시타르타(佛敎)의 새로운 개념이다. 그것을 단지 번뇌가 모두 사라진 상태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기엔 미흡하다. 그것은 소생이 불가능하게 된 생명의 완전한 소멸이다. 거기에 윤회(輪廻)는 붙을 여지가 없으며, 힌두의 해탈과는 개념부터 다르다. 초기불교는 혹 깨달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초장(수다원, 사다함)의 ..
무위의 삶 '사람이 평생동안 끄달리는 걱정꺼리의 99%는 경망스런 생각(妄想)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근심은 심신만 상하게 할 뿐, 유사 이래 걱정으로 문제를 해결한 적은 없다. 그러나...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사람들은 평생 걱정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모두가 신의 뜻이야", "될 일은 될 것이고, 안될 일은 세상 없어도 안돼" 말로는 그리 하면서도 한시도 걱정을 놓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어째서 그럴까? 한마디로 無知해서 그렇다. "그것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 하지만 근심이 일어나는 걸 난들 어찌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걱정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에 달고 산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나 같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어찌하여 걱정에 묶여 살 수 밖..
신선(神仙)이란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공유한, 즉 선계(仙界)와 욕계(欲界)를 공유하는 존재이다. 그는 깨우침을 통해 신성(解脫)을 얻었지만 인성, 즉 오온(五蘊)과 칠정(七情)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온: 色受想行識(몸, 느낌, 생각, 의지, 식별력) *칠정: 喜怒哀樂愛惡欲(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기대심) 그는 Nibbana(涅槃)와 현상계(現象界) 양쪽을 자유롭게 오가며,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즐기며, 고통 속에 있는 인류에게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다. *열반(涅槃): 해탈 즉 오온(五蘊)과 칠정(七情)을 포기함. *상락아정: 불멸(常)을 득했고, 고통이 없는(樂) 존재감(我)을 지녔으며, 세상의 때(카르마)로부터 자유롭다(淨)는 뜻. 불교수행자들이 고수하는 깨달음의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