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고통받는 자는 없다? 본문

Taiji Yoga/6. 무아론 (Anatman)

고통받는 자는 없다?

thedaywemet 2020. 8. 18. 08:00

아난다(Ananda)는 석가(釋迦)의 사촌 동생으로 그의 시자(侍者)로 일하며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했답니다. 대부분의 초기 경전이 그의 기억력에 힘입어 결집(結集)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석가의 말을 모두 외울 정도로 영특하였으나, 실제로는 깨닫지 못해서 붓다 입멸(入滅) 후 상당 기간 소위 '아라한'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고 합니다.

심심치 않게 "고통은 있어도 고통받는 자는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관찰해보면 우리처럼 고통받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어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이 더 심한 듯도 보입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뻔히 아픈 것을 두고 '안 아프다'를 외운다고 하여 아픈 것이 아파지지 않는 법은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으로만 믿음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한 말입니다.

남들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외울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 말이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실제로 그 말처럼 세상을 대하며 살 수 없다면 그것이 자신이나 세상에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다.

석가가 "나는 없다"라고 했다 해서 무아(無我)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비어있다(空)'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어는 있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반야심경(般若心經) 초장은 "색(色)이란 공(空)과 다르지 않다(色不異空)"로 시작합니다.

고통도 있고, 고통받는 자도 있습니다.

고통받는 자가 없다면 수행은 해서 무엇할 것이며, 수행은 도대체 누가 한답니까? 허깨비가 한답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얻은 깨달음이 믿을 만은 할까요?

말하는 자도 있고, 듣는 자도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고통받는 자가 없다"는 그만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흐르는 숨을 지켜보아야 하고, 끊임없이 전신을 스캔(body scan)하며 살펴야 합니다.

그리한다면 "고통받는 자가 없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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