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아트만(Atman) 그리고 무아(無我) 2 본문

Taiji Yoga/6. 무아론 (Anatman)

아트만(Atman) 그리고 무아(無我) 2

thedaywemet 2020. 8. 16. 08:00

"불교와 힌두교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힌두교와 불교는 인도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싹이 트고 자라났다. 힌두교는 불교가 쓸고 간 자리에 먼저 있던 브라만교의 후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불교는 석가모니라는 걸출한 인물에 의해 초장(初場)부터 브라만교의 움직일 수 없는 '아트만(Atman)'설을 반박하는 무아(無我)설을 내놓으며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힌두교와 불교는 거의 비슷하다.

나머지는 나중에 살피기로 하고, 윤회(輪迴)에 대해서 우선 다루어보기로 하자.

석가모니의 주장처럼, "'나'라고 하는 것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윤회(輪迴)하는가?"라는 질문에 오늘날 불교학자들은 무아론(無我論)적 윤회(輪迴)란 아리송하고 어려운 주장을 한다.

무아(無我)는 맞지만, 윤회(輪回)도 한다는 것인데, 같은 불교 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이 죽어 흙이 되어 여러 다른 원소들과 섞였다가 다시 태어날 때 그것들이 취합되어 몸을 구성한다면, 당연히 먼저 가졌던 몸은 아닐 것이고, 마음 역시 먼저 것의 독특한 캐릭터가 유지될 수 있을까?

개별적 자아(自我)는 사라지지만, 업(業)이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가, 다시 태어날 때 그것이 유전(流轉)된다는 것인데, 몸과 마음은 전혀 달라졌는데 거기에 업(Karma)만 동일한 것을 입혔다고 과연 같은 사람일까? 

업(業)이란 것은 인격이 아니지 않은가?

또한 수 만겁(萬劫)에 걸쳐 수만 번 환생(還生)했다면, 이번엔 그중 어떤 것이 이번에 윤회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두 번이 아니라 셀 수 없는 윤회를 거듭했다면... 그 모든 캐릭터(마음)가 섞여 한 뭉텅이가 되지는 않았을까? 

우리 하나하나는 독특한 품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번 생에서의 캐릭터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석가모니 역시 제자들의 질문에 명쾌한 답변은 피한 채, "그것(輪迴의 有無)이 너희의 공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하니 실로 모호하기 짝이 없다.

일전에 친하게 지내는 큰 스님(전 해인승가대학 講主)에게 "무아가 맞다면 무엇이 윤회합니까?"라고 물으니, 
"글쎄. 그 문제로 스님들 여럿이 회의를 하였는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어."라고 하셨다.

우리는 너무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기독교 등 다른 종단처럼 "인간들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니 가르치는 대로 무조건 믿어라"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728x90
반응형

'Taiji Yoga > 6. 무아론 (Anatm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통받는 자는 없다?  (0) 2020.08.18
아트만(Atman) 그리고 무아(無我)  (0) 2020.08.15
무아의 주장은 위험합니다  (0) 2020.03.05
인과와 연기  (0) 2020.02.14
보는 자가 없다면..  (0) 2020.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