和光同塵

에고를 죽여선 안 된다

알아챔 2024. 9. 17. 11:37

'나', 즉 "자아(自我)라는 것이 실재하느냐"는 질문에

싯다르타는 무기(無記)를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아는 없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무기 했다고 불경(佛經)은 전한다.

'무기'란 가부(可否)를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는 뜻이다.

 

좀 답답하겠지만, 자아란 것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중도적(中道的)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선문(禪門)에서는 있다고 해도 30방(榜), 없다고 해도 30방(榜)을 주었었다.

 

나는 에고(自我)의 실재(實在)를 주장한다.

그리고 주장하는 그것 자체가 ‘에고’이다.

 

과거에 에고가 실재하지 않았을 수 있고, 미래에 에고가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에고는 엄연(儼然)하다.

 

필자가 쓴 "에고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글을 보면 발끈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자아가 없는지, 왜 자아를 죽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발끈하는 그것의 주체(主體)는 무엇이냐"고 말이다.

 

나는 칠십 평생을 에고 속에서 살아왔고,

그동안 한차례도 에고가 사라지거나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약간 에고를 눅이고 사는 사람은 보았어도 말이다.

 

깨어 있어야 한다.

에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까지 성성(惺惺)해야 한다.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접하면 에고는 스스로 모습을 감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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