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는 하나다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오늘 당장 죽고 말리라고 결심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싸워선 안 된다.
깨달음 이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는 사람은 스승이 되어도 좋다.
그런 사람은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을 뿐, 얻을 것은 없는 사람이다.
무언가 얻어진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아직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이런저런 깨달음의 체험을 중요시한다면 그는 깨달음의 겉만을 본 사람이다.
소주천(小周天)도 마찬가지다.
임독맥(任督脈)이 열리면서 전신의 맥(脈)들이 모두 열린다.
아니, 열려진 전신의 맥들이 임독맥을 열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외단공(外丹功)이 없이, 단전(丹田)을 열지 않고 단순히 의념(意念)만으로 소주천 흉내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소주천이 아니다.
또한 호흡으로 밀어서 임독맥을 열었다는 사람도 완성이라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국도(國道), 지방도(地方道)가 없이 고속도로 공사(工事)만 한 것과 비슷하다.
깨달음만 얻은 사람은 아직 아쉬운 것이 남아있다.
반쪽 공부만 되었기 때문이다.
소주천만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공부가 반만 된 사람이다.
성(性)과 명(命)은 둘이 아니다.
그 둘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부는 성명쌍수(性命双修)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안심입명(安心立命)은 命이 바로 서야(立) 가능한 일이며,
命을 세우려면 필히 에너지(氣)를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 비로소 안심(安心)이 된다.
세상과 나는 둘이 아니다.
이 세상이 없이 어디 가서 도(道)를 구한단 말인가?